2013.07.14 11:17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열풍은 이제 문학비평을 넘어 사회비평의 대상이다. 장편소설 ‘1Q84’ 후 3년 만에 선보인 그의 최신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초판 20만부가 인쇄돼 이달 초 서점에 깔리자마자 바로 베스트셀러 1위로 뛰어올랐다. 평일 대낮의 서울 주요서점에 독자들을 줄 서게 만드는 작가는 국내외를 통틀어 하루키 외에는
없다. 이 소설은 지난 4월 일본에서 초판
50만부를 찍어냈고, 일주일 만에
100만 부가 넘는 판매기록을 세웠다. 소설만이 아니다. 이 작품의 주요 테마로 등장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한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는 절판된 음반이었음에도 복간되어 클래식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작가. 연전에 미국 샌프란스시코 공항에서 워싱턴DC로 가기 위해 비행기 보딩을 기다리던 중 중년의 남녀 두 명이 공항 통로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에
탑승을 하고 보니 마침 그들 옆좌석에서 앉게 되었는데 한 사람은 영역된 하루키 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을, 또 한 사람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고 있었다. 워싱턴의 한 로펌에 근무하는 부부 변호사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이들은 바빠서 소설을 거의 읽지 못하지만 하루키 소설만은 틈틈이 본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엔가는 저녁 늦은 시간에 지하철 경로석에서 두툼한 책을 읽고 있는 노인을 봤는데 제목을 봤더니
하루키 소설 ‘1Q84’였다. 어르신이 이런
소설을 읽는 것은 좀 뜻밖이라고 말을 걸었더니 누군가의 소개로 읽기
시작했는데 조금 읽다 보니까 정신없이 읽게 된다고 했다. 읽고 있는 곳은 3권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1권이 700여 페이지, 2권이 600여 페이지, 3권이 750여 페이지니까 벌써 2000여 페이지를 읽은 것이다. 76세라고 했다.
하루키 독자들은 이런 식이다. 국경이 없고 남녀노소가 없다. 에세이나 소설은 물론 그가 언급하는 음반이나 치노팬츠, 로퍼, 태그호이어 같은 물건들도 유행이 되는 세상이다.
국내 일각에서는 하루키를 읽는 것이 ‘수준이 낮다’거나 ‘하루키가
과대평가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하루키의 독창적인 어법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과대평가된 작가가
30년 이상 지구촌을 사로잡을 리가 없다. 더구나 하루키는 고갈되어가는 작가가 아니라 세월이 지날수록 독자층을 넓혀가는 작가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비롯해 일본 거의 모든 문학상을
수상했고, 프란츠 카프카상(2008년), 예루살렘상(2009),
카탈로니아 국제상(2011) 등 지구촌 굴지의 상을 휩쓸고 있다. 더구나 예루살렘상과 카탈로니아 국제상은 문학상이 아니다. 세계 굴지의 국제정치 및 사회·인문분야의 상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선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 상의 수상연설인
‘벽과 알’(예루살렘상), ‘비현실적 몽상가’(카탈로니아 국제상) 등을 읽어보면 세계의 도시에서 왜 하루키를 꼽는지, 하루키가 수상하러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현지 언론이 왜 들끓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 평이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설명하려고 아우성친다
대부분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세상을 산다
하루키는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지 구촌에서 이처럼 하루키가 읽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하루키는 설명하지 않는 작가라는 점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는 어떤 작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하루키의 특징이다. 작가는, 또는 화자(話者)는 누구나 자기의
세계를 설명하려 한다. 대부분 자기가 말하는 것을 전달하고, 이해시키고, 동화시키기 위하여 이야기의 톤을 높이고 아우성을 친다.
세상이 시끄럽고 거칠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자 윤창중은 격문(檄文) 직설(直說)을 날려 청와대 대변인이 되었지만
단 몇 개월도 버티지 못했다. 국가정보원장
남재준은 국정원이 2급 기밀문서로 분류해 보관해온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세상에 공개해 국정에 파란을 일으켰다. 민주당 원내대변인 홍익표는 “만주국의 귀태(鬼胎)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말했다가 사흘도 버티지 못하고 대변인에서 사퇴했다. 자기
격정과 독단을 제어하지 않거나 제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설명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통이 잘되는 방법을 찾아낸다. 하루키가
지구촌 어디서든 독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설 명하는 대신에 하루키는 깊이 있게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린다.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설명하는
것은 쉽다. 설명하지 않고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하루키는
작가가 직접 판단하지 않고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매력적인 형태의 다른 것으로 만들어 제시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어떤 대목이라도 따분한 경우가 거의
없다. 작가가 이래저래 관여하면 글의 깊이가 없어지고 하나의 설명으로 고착화되기 마련이다.
부모가 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아이는 부모를 따분해한다. 그러나 그 대신에 ①여행을 함께 가거나 아니면 공원에라도
놀러가서 친밀감을 높이고 ②어느 날은 도서관에 가서 지식에 대한 흥미를 북돋아주고 ③서점 구경을 가거나
아이의 방에 꽃이라도 꽃아 놓아 쾌적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면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듯 하루키는 결론을 내리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주입하는 대신에 가설(假說)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완성시킨다. 그렇게 가설을 쌓아가는 것을 그는 ‘마치 잠든 고양이를 안아드는 것’으로 비유한다.
이야기라는 아담한 광장 한가운데 잠든 고양이처럼 포슬포슬한 가설을 얼마나 자연스럽고 솜씨 좋게 쌓을 수 있는
지가 바로 소설가의 역량이라고 본다.
그가 만들어내는 가설의 공명(共鳴)이 의외로 기똥차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의 출세작 ‘노르웨이의 숲’은 우리나라에는 처음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소개됐었다. 성인으로 성장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다룬 이 소설은 분명 ‘상실의 세계’,
혹은 ‘상실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 제목을 ‘상실의 시대’와 같은 문예(文藝)형 또는 설명형으로 만드는 작가가 아니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포슬포슬하게 잠든 고양이로 만드는
작가가 바로 하루키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것을 꺼려하는데, 아주 예외적으로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란 무엇인가’라는 에세이. 한 독자가 “며칠 전에 시험을 봤는데 원고지 4매(일본 원고지는 400자,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8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왔다. 혹시 그런 문제를 받는다면 하루키씨는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이에 대해 하루키는 “원고지 4매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며 굴튀김으로 이야기를 바꾼다. 여기서
‘굴튀김’이란 어떤 하나의 대상 혹은 사상(事象)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사물과 자기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와 방향을
데이터로 축적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관찰(가설)이
동원되고, 비유로 사상(事象)과 그 이면을 오가는 그네타기를 시도한다. 비유가 하나의 사상 A를 설명하기 위하여 멀리에 있는 다른 사상 B를 불러다 대비시키는 일이라면, 단언컨대 하루키는 이 세상 작가 중에서
가장 먼 A와 B 사이의 그네를 탈 수 있는 작가라고 보면 될 것이다(출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일본평론가가 이같은 분석을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비유가 참신하다는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굴은 어느 깊은 바다 속에 있었다. 밤낮없이 단단한 껍데기 속에서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접시 위에 있다. 튀김으로 변한 굴을 젓가락으로 찔러보면 똑같은 굴이다. 그러나
다른 굴이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힌 굴의 감촉과 향이 축복처럼 입안에 퍼진다. 나는 이런 굴튀김을 만드는 사람이다. 식사를 마치고 역을 향해 걸어갈
때 어렴풋하게 굴튀김의 조용한 격려를 느낀다. (…). 그렇게
제시하는 가설들이 층층이 쌓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움직여나가고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 하루키는 진정한 나를 설명하는 대신에 ‘굴튀김이란 소재를 잘 풀어서 가설을 쌓아나가는 것’으로 ‘진정한 나’를 그려낼 수 있다고 본다. “굴튀김에 관해 이야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2. 독창적인 유기체를 만든다
설명하는 대신에 보슬보슬한 가설을 세워나간다
세상 겉모양과 이면 사이에서
비유의 그네를 탄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독자들이 판단하게 만든다
하 루키는 작가의 판단 대신 ‘가설의 틀 세우기’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묘사’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은 직접적인 개입이고, 묘사는 형상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이때 하루키가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색다른 비유와 독자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설정이다. 그의 ‘빌리 홀리데이 이야기’라는
글에서 예를 들어본다.
젊 은 하루키가 도쿄 외곽의 작은 빌딩 지하에서 재즈 바를 운영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따금 한 미국 흑인 병사가 일본 여성과
함께 가게를 찾아온다. 재즈 바를 찾아오는 흑인 병사라고 하면 독자들은 시끄럽고 덩치 큰 군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가 설정한 병사는 조용하고, 호리호리한 일본 여성과는 친구이면서도 미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내성적인 젊은이였다. 독자들의 예상을 가볍게
벗어난다.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재즈를 듣고 가끔 빌리 홀리데이의 판을 틀어달라고 부탁한다. 20세기를 감동시킨 재즈 3대 디바 중 첫 번째로 꼽히는 흑인 여가수
빌리 홀리데이.
어느 날 흑인 병사는 혼자 찾아와 구석 자리에서
빌리 홀리데이를 들으며 조용히 어깨를 흔들면서 운다. 하루키는
흑인 병사가 무안해 할까봐 못 본체 하며 다른 일을 한다. 그것이 그 병사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후 일년쯤 지나 함께 오던 여성이 혼자 나타난다.
어느 비 내리던 가을밤이었다. 여자는 그 병사가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병사는 고향 사람들이 그리워질 때마다 이 가게에 와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들었다고,
이 가게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고. 그녀는 그리운 듯 추억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그가 지난번에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자기 대신 그 가게에 가서 빌리 홀리데이를 들어달래요.” 빌리 홀리데이의 판이 다
돌아가자 그녀는 레인코트를 조심스럽게
걸쳤다.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그 인사를 듣고 하루키는 적절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얼마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설)들의 조합인가. 하루키는 ‘재즈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재즈란 무엇인가. 빌리 홀리데이란 누구인가. 그것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삽상하게 흑인병사와 일본여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런 결론으로 유도한다. “나는 지금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조용했던 그 흑인 병사를 떠올린다. 멀리 떨어져 조국을 그리며 카운터 한쪽 구석에서 소리 죽여 흐느껴 울던 남자의
모습을. 그 앞에서 조용히 녹아들던 온더록의 얼음을. 그리고 멀리 떠나간 그를 위해 빌리 홀리데이를 들으러 왔던 여성을. 그녀의
레인코트 냄새를. (…). ‘재즈란 어떤 음악인가요’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이런 게 바로 재즈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재즈란 그런 존재다. 꽤나 긴 정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 이보다 더 유효한 정의는 알지 못한다.”라고.
이것을 이번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를 통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주인공 쓰쿠루는 나고야에서 성장하며 고교시절 5명의 그룹 멤버들과 아주 친하게 지낸다. 그 그룹이 주인공에게는 세상의 중심이다. 혼자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 쓰쿠루는 대학
2학년 어느 날 한 멤버로부터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절교
통보를 받는다. ‘그냥 사라져 줘.’ 이것이 쓰쿠루를
뺀 네 명의 공통된 의견이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아무리 만남을
시도해도 그들은 쓰쿠루를 외면했다. 그날 이후로 쓰쿠루의 세상은 달라진다. 모든 의욕을 잃게 되고 늘 죽음의 곁에서 사는 세월이 이어진다. 16년이 지나 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을 때 여자친구는 쓰쿠루에게
그 상처를 해소해야만 한다는 조언을 해준다. 그리고 여친은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네 명 중 세 명의 현재의 위치를 검색해 알려준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쓰쿠루는 그들 네 명을 하나하나 만나는 순례여행길에 오른다.
일종의 추리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피 아니스트였던 여자 멤버(白)는 강간당한 후 심한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다 외딴 곳에 가서 살해당했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누구도 쓰쿠르가 죽은 여자 멤버(白)를 강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16년 전에 그를 강간범으로 몰아 왕따 시켰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주인공은 이야기의 키를 쥐고 있는 다른 여자
멤버(黑)를 만나기 위해 핀란드로 간다. 그녀는 핀란드 남자와 결혼해 일본을 떠났다. 그녀는 긴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한다.
“괜찮다면 나를 안아주지 않을래?”
여 기에 포인트가 있다. 작가는 친구들이 왜 쓰쿠루를 강간범으로 몰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작품 어디에도 그런 설명은 없다. 그러나 “괜찮다면
나를 안아주지 않을래?”라는 말은 직접적인 설명 그 이상이다. 그녀(黑)는 심각한 정신분열 상태에 빠진 친구(白)를 치유시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던 쓰쿠루를 곤란한 상태에 빠뜨리기
위해 쓰쿠루를 강간범으로 몰았던 거였고, 작가는 ‘괜찮다면 나를 안아주지 않을래?’ 이 한마디로 모든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이것은 고해성사이자
화해와 치유의 장치다. 이런 부분에서 하루키의 소설은 날개를 단다.
작가는 덧붙인다. “그때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3. 답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 잇쇼켄메이(一生懸命) 같은 무거운 말은 쓰지 않는다
캔맥주와 음악처럼 가벼운
어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세상을 탐색하는 치밀함은 당대
최고다
하 루키는 집요하고 극한적인 묘사에 매달리지 않는 작가다. 매달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장을 배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1979년 첫 데뷔작이자 ‘군상(群像)’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첫 문장에서 “완벽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말야.”라고 쓰고 있다. 이 말은 그가 문장에 대해 상당히 고심했음을 알려주지만 동시에 그가 문장에 매달리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 뒤에는 이런 문장이 이어진다. “내가 대학생 때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작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참뜻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지만 당시에도 최소한 그 말은 내게 일종의 위안이
되기는 했다. 완벽한 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그러나 그래도 역시 뭔가를 쓰려고 하면
언제나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쓸 수 있는 영역은 너무나도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코끼리에 대해서는 뭔가를 쓸 수 있다 해도 코끼리 조련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런 뜻이다. 8년 동안 나는 계속 그런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8년 동안. 긴 세월이다.”
이렇게 토로하는 하루키가 들고 나온 문장은 집요하면서도 극한으로 밀고
가는 문장이 아니라 심플하고도 쿨한 문장이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기구치 칸(菊池寬),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등 일본 문예미학의
정점을 찍었던 작가들을 그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문장은 한없이 아름답고 다루는 세계는 똑떨어지는 일본 문예미학의 대가들을 언급하는 대신 데릭
하트필드,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커트 보네거트, 리차드
브라우티건 같은 미국 작가들에게서 소설을 배웠다고 말한다. 특히
첫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그는 소설의 많은 것을 데릭 하트필드에게서 배웠다고 여러 군데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트필드 자신은 모든 의미에서 ‘불모’의 작가였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문장은 읽기 힘들고 스토리는 엉망이고 테마는 치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트필드는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뛰어난 작가 중 하나였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와 같은 동시대의 작가와 견주어도 하트필드의 그 전투적인 자세는 결코 뒤지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하트필드 자신은 마지막까지 자기가 싸우는 상대의 모습을 명확하게 포착하지 못했다. 결국 불모라는 건 그런
뜻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데릭 하트필드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도 하트필드는 어떤 작가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람이다. 하트필드는
하루키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라는 분석이 대세를 이루지만, 중요한 것은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작가, 그러나 끝내 불모의 작가”라는 하루키의
관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글을 무기로 싸운다’거나 ‘끝내 불모’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그가 자주 언급한 나머지 작가들, 즉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커트 보네거트, 리차드 브라우티건 같은 작가들을 연결시키면 대략 떠오르는 것이 있다. 설명하지 않고 무진장한 유머와 단문으로 치닫는
커트 보네거트, 고정적인 주인공이나 스토리가 없이 에피소드를 이어가면서 놀라운 상상력을 펼쳐내는 리차드 브라우티건. 이들이 문장을 통해 세상과 대결한 기록은 치열하다. 그런 반면 끝내 불모성으로 추락했음을
미국문학사는 안타까워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누구인가. ‘대성당’ ‘발 밑에 흐르는 강’ 등을 남긴 레이먼드 카버는 현란하게 기교를 부린 문장은
아예 때려치우고 일상어로 소박한 경이로움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의 문장이 추가되면 독자의 상상력이 허물어지고, 반대로 하나의 문장이 생략된다면 이야기 자체가 허물어질 정도로 작품을 정밀하게 구성한
작가였다. 이들의 결합이 하루키라고 보면 묘하게 짚이는 데가 있을 것이다.
공통점은 이들이 불모의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문장으로 세상의 객관화에 대해 치열하게 싸웠고 끝내 무너진 작가들이라는 사실. 이 점이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만들어냈던 일본
선배 작가들과 하루키의 차이점이다.
세계의 고정성에 갇히지 않는다.
계속적인 탐색 과정에 있다.
완성되지 않는 불모성을 전제로 한다.
하 루키는 계속 변화하고 있지만 이 같은 기본적인 글쓰기의 틀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키는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야기의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하루키 작품의 주제이자 방법론이다. 앞에서 하루키는 설명하지 않는 작가라고 말했다. 이 말은 “하루키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다루는 작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하루키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작가(혹은 주인공)와
세계 사이에 놓인 거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가설과 비유와 에프소드 속에 드러나는 몇 개의 프리즘. 어떤 것은 밝혀지고 어떤 것은
질문 속에 들어있거나 과정 그 자체가 답이 되기도 한다.
이번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역시 몇 개의 부분을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두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하는 하루키의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든 다시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우 리나라에서는 일정한 정도로 하루키의 소설이 가볍다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런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0년 이상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고, ‘하루키 현상’이라는 사회·문화적인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으며, 하루키의 독자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법과 소설방법론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잘 소통하고 있는 작가를 우리의 거대담론의 틀로 재단해보려는 시도는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2013.07.14 11:33
2013.07.23 08:09
선배님. 스포일러에요.흑흑흑--- 그래도 읽고 싶네요 "색채가 없는 다자키~"
2013.07.24 19:46
내가 村上春樹(무라가미 하루끼)를 대면한것은 그의 " 遠 太鼓( 먼데서 들려오는 북소리) 라는 책 이다.
그는 이 책을 수필적 여행기라고 스스로 말 하는듯, 독특한 쟝르의 여행기 라고 전제한 그런 책이다.
제목을 외" 먼데서 들려오는 북소리" 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유혹되여 /
나는 길고 긴 여행을 떠난다 / 낡은 외투에 몸을 감춘 나는 / 모든 과거를 뒤로 하고/ 라는 터어키의
엤노래에서 따 왔다고 했다. 그는 그때 그의 나이가 37세, 3년을 여행중이었으니까 , 여행을 마칠 때,
나이가 40 세 였다. 여행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온 그는 아래와같은 말로 대신 한다.
이렇게 떠나있던 3 년간의 의미는 일단 무엇이었던 것일까 스스로 샐각 할때, 그간에 무엇이 있었던
간에 나는 다시 출발점이었던 곳으로 되돌아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는 말 한다.
내가 고국을 떠났던 이유는 방황 하던 스스로를 찾기 위함이었는데, 40 이 되여 돌아온 지금나는
변함없는 그때 그대로 나,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내가 아닌가 라고 하면서, 그것을 그는
"무력감은 무력감으로서, 피로는 피로 " 로서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
단지 나이를 먹는것 만으로서는 무엇 하나 해결 되었던것이 아니라는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 하기를, 무어 그렇게라도 하며, 무사히 돌아온 것으로 된것 아닌가 라고,
얼마던지, 어려운 일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하면서 , 생각 해 보면 면 나는 낙관적인 인간
축에드는가 보다. 라고 자신을 말 하고 있다. 이 시기에 그는 그의 출세작 " 노르웨이의 숲" 괴
" 땐스 땐스땐스 " 라는 장편소설 2 권을 썻다. " 노르웨이의 숲 " 이 베스트 셀라가 된뒤,
여러사람들에게서, " 당신은 에째서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렸다고 생각 하십니까 "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말 하기를 "물론 나에게는 그런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런것들은 다
다른사람들의 생각이기때문에. 나는 그저 소설을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외 이런 소설을
쓰게 된것일까를 나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떄는 그렇게 밖에 쓸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쓰고 말았다 고 한다, 좋던, 나뿌던간에 나로서는 그렇게 쓸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
라고 알아 주었으면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소설에 대하여 내가 확실히 한가지 말을 한다면
거기에는 이국의 그림자(냄새 나의생각) 같은 숙명적인 내음이 스며들어 있다 라는 말만 할수 있자
라고 말 합니다.
작품의평은 소설사가 나, 평론가들에게 마끼고, 소설가는 그저 쓰기만 한다 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읽는이들이 좋와서 읽게 되면 되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구미를 마추지는 않는다 라는
말도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장편소설을 별로 좋와하지 않는다. 단편소설이나, 수필정도를 선호 하게 된다는 말이다.
소설이란, 작가의 구상에 의하여 시대사조, 인간성 따위를 현실화시켜 그려낸 문학적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중점을 가려 낸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다른 별
이유는 없다.
그러나, 단편소설(Short Story) 이나 수필(Essays) 은 하나의 인상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간결하게
적은 것들이기에 게을러 빠진 내가 그저 선호하게 된것 뿐이다.
요사이 산우회 싸이트에는 " 와인 " 이야기로 도배 되여 있다 " 쿠보제" 라는 술 이름도 등장한다.
이술은 포도주를 증류시켜 만든 술 이므로, 그 조상은 포도주, Wine 이다.
" 하루끼" 씨의 먼데서 들려오는 북소리" 라는 책속이 " 토스카니" 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Wine 고장 이야기니까 자연 Wine 에 관한 이야기 이다.이글의 전문을 소개 하려고 한다.
나의 단필이 그의 작품성하며, 그의 간결한 문체가 어덯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가,
또 인문학적인 그의 사고, 사상등이 제대로 전달이 될찌는 모르겠다. 미숙한점이 있드라도,
넓은 아량으로 감싸고 덮어 주길 바랄 뿐이다
* 참고로 이책은 " 먼 북소리 " 라는 이름으로 우리말로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
2013.07.27 16:50
토스카니 (tuscany) ; 村上春樹 作. 大愚 譯
실제로 살아보면 아는것이지만, " 이타리아 " 는 그렇게 큰 나라는 아니다.
로마 는 이 장화형반도의 대체로 정중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거기서부터
북단에 있는 " 오스트리아 " 국경 까지, 남단에있는 " 레지오. 디. 카라부리아 ReggidDiCalabria " 까지
대략 700 Km 조곰 넘는 길이 밖에 안되는 그런 곳이다. "아우토 스트로라타 " 고속도로를 타면,
당일로 끝에서 끝까지 도착하게 된다. 그렇기때문에, " 이타리아 " 국내는 거이 전역을 여행하며
돌아 다녔다. 그렇다고 구석구석 까지를 다 갔다는 것은 아니다. 못가본 주요도시도 있지만 예를들면
" 나포리 " " 토리노 " 등등의 지방에는 발을 드려 놓았다.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 하면
" 토스카니" 지방, 정확히 꼭 찝어 말 한다면 " 기안티Chianti " 라는 곳이다. 이곳 같으면 집을 사서
살아도 좋치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만으로는 집을 살수 없는것이 , 오랫동안 빈집으로
노아 두었다가 가보면 가구들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것은 정말 싫기
때문이다. 이말은 정말이다. 반대로 이런곳에서는 정말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되는 곳이라면
" 시실리 Sicily " , 밸을 뺴 버리고, 뼈를 묻을 각오로 가지 않으면 , 어찌됬던, 솔찍히 말 해서,
타지방 사람들을 매끈하게 받아 드리려고 하는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 갈라부리아,
Calabria " (장화형반도의 엄지발까락 근처) 또 하나의 마음 내키지 않는 곳이다.
그와는 달리, 북부지방에는 아름답고 좋은 고장이 많지만, 그고장들이 너무 빈틈없이 꾸며진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것이 있어, 오래살게 되면 일본인의 감각으로는 어느때가 되면 실증나는
데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기후적으로 겨울은 매섭고 춥기도 해서.
기후가 좋은 곳이라면 " 로마 " 이긴 하지만, 이곳 에도 꽤나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안티 " 를 떠 올린 것이다. 이곳은 무어라고 해도 경치가 빼어나게 수려하다.
경사가 고른 푸르른 구능들이 차례차례로 늘어서 있고, 사면에는 포도원들이 널려 있다.
교통량이 적은 꾸불꾸룰한 아름다운 길이 어디까지나 계속되기 때문이다. "로마"를 출발,
A 1 고속도로를 타고 이곳까지 오게 되면 기분이 갑자기 상쾨 해 진다. 풍경이 확 트여지니
공기마저 맛갈스럽기만 하다. 사람들도 어느곳 보다 부드럽다. 도시가 그리워지면,
"후로렌스 Florence" 나 "씨엔나 Ciena" 에 갈수도 있으니까. 와인도 요리도 말할수 없도록
맛이 있다. 또 한꺼번에 한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와인을 살수 있다는것이 내가 "토스카니"에
자주가게 되는 하나의 이유이다. 이곳 저곳 포도원을 돌아다니며 산지직매의 와인을
몇 상자씩 사서 돌아온다. 로마에서 와인을 사러 간다고 하면 남쪽 가까운 " 후라스카티 Frascati"
가 제일 가깝지만, " 기안티 " 와인의 그 콕크에 스며든 맛에 한번이라도 빠져 버린 사람에게는
" 후라스카티 " 근처의 와인은 어찌됬던 세련되지 않은 촌스런 맛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후라스카티" 에도 후라스카티적 매력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 기왕 가야한다면 다리품을
좀 팔드라도 " 기안티" 에 라고 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은 해도, 니는 특별히 와인을 자세히 알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어떤부류에 속하는가 하면, 와인을 건성으로 건성 건성 아는 정도의 사람.
어느지역의 어느사면에서, 몇년도에 딴 포도가 어쩌고 저젰다 고 하며 따지는 것같은 것은
나에게는 약간구차스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토스카니"에 가서, 와이나리를 돌며
테이스팅을 하는 동안에, 적어도 그 세계의 밑바닥의 깊이를 어느정도는 알게 되였다.
"와이나리"의 아저씨가 이것은 저쪽 밭, 저것은 이쪽 밭의것 하면서, 따로 따로 마시게 하면
그것이 바로 옆의 밭의 것이라 하드라도, 맛이 딴판으로 다른것은 구별이 된다. " 어느것이
더 맛이 있는가" 고 물어오면 조곰은 정떨어지는 말이 겠지만 어느쪽도 다 맛이 좋은데요 한다.
내가 좋와하는 맛은 기본적으로는 조금 하드 (혜비 드라이 역자 주) 한 감이 드는 순수한 맛이
일정한 빨강 이다. 입에 물고 , 조곰만 주저하고 있으면, 돌연 芳醇 (향기높고 향이 좋은 진한 술,
역자주) 한 테이스트가 힘차게 용소슴쳐 오는것 같은 차분한 와인. 언어로 표현하기란, 어려운
점이 있지만, 정작 마셔보면 간단한 이야기다. 응 ! 응 ! 이런것이구나 1 하면 끋 나는 것이니까.
이런정도의 레벨에서 이야기가 한정된다면, 메주알 코주알 하고 쓴다는 것은 전연 무의미 하다.
"기안티" 의 포도주 창고를 돌아다니며 느끼는 醍醐味(제호미, 우유에 칙뿌리가루를 섞어 쑨 죽맛
, 역자주) 란 실로 이런것에 있는것은 아닐까. 실체라는 것은 대개 이런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자미스러운 맛 (맛이좋고 자양분이 많은 음식의 맛) 을 레스토랑에서
경험 한다는 것은 "스눕Snoop" 에 불과하고 돈도 꽤 든다) * Snoop = Discavary.
미리 말을 했어야 하는 것인데, :기안티 지방은 후로렌스의 남쪽, 시에나 의 북쪽의 중심부
에 걸쳐있는 지역이다. 막연히 지역을 가르키는 총칭은 아니고, " 기안티" 라고하는 경계가
뚜렸하게 확실히 지여져 있는 지역이다. 그 엣날 " 기안티 "라고 할 때는 "랏다" "카이오레"
"카스테리" 라고하는 세 고장을 엮은 군사동맹의 이름을 말 했찌만, 현재는 그저 특정의 포도주를
생산하는 " 존 " 의 호칭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 이 일반적으로
" 기안티 크라시코, Chianti Classico) 라고 불려 지는데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전부 를
" 기안티 크라시코 " 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 성분 제작방식이 법율로 엄격히 규정되여 있어서
그것에 조곰이라도 일탈(逸脫)되게 되면 , 그 이름을 부쳐주지 않는다. ( 이타리야 사람들은
마시고, 먹는 일에 대해서는 실로 열정적이고, 진지하다) 면적은 약 430 평방 Km 이지만
이 지방에는 좋은 여관들이 꽤나 많다.대형호텔은 없지만 일본식으로 말을 한다면
" 趣(재미취) 가 있는 지방 여관 적 " 이라고나 할까 하는 것들이다. 가격에 있어서도 별로 비싸지
않다. 이타리야 의 호텔은 그 내용에 비해 대단히 비싸다. 당하고나면 황당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그런경우를 당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분위기도 좋고 설비마저 확실하게 되여 있다.
이 지방 여관의 특색은 와이나리 ( 이타리아 식으로는 후앗토리아) 를 개장 한다든가, 농가를
개장한 것들이 많다. 어떤것들은 와이나리어 가 와인을 사러오는 상인들을 숙박시키기 위하여
시작한 여관도 있다. 이런곳에서는 그 와이나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맞는 요리를 내놓는 식당이
붙어 있께 마련인데, 와인의 맛을 끓어내기 위한 특별한 요리를 내 놓게 되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이런경우는 어느나라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술꾼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대체적으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된다) 술맛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양질의 재료, 그 양질 재료의 성질을 살려낼수있는
그렇게 고려된 요리를 말한다.(요리를 제대로 할려면 온도가 중요하지만 온도를 제대로 상승유지
시키는 Pan 같은 기구도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가지 Pan 즉 얕은것 깊은것 바닥이 넙적한것등
구리,무쇄, 질그릇,등 엄청난 기구가 사용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루끼 씨는 하고 있는 것이다역자주)
"토스카니 " 에는 이런류의 요리가 살아 숨쉬고 있다.이곳 요리에 비한다면 로마 레스토랑의 맛이란
한참 그 정도가 지우쳐진 감이 있다.
이책은 여행가이드 책이 아니므로 하나하나 이름들을 대 가며 적지는 않겠지만, 내가 묵었던 여관중에
인상에 남아있는 여관들은 얼마던지 있다. 대개는 객실이 그렇게 많지 않은 작은 것 들이었다.
이런 여관들은 가이드 책에는 나와 있지도 않다. 이런여관 주인에게 " 어딘가 이 근처에서 맛이
깔끔한 와인을 사고 싶은데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다고 " 부탁해보는 것이 좋다. 때때로 횡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이름을 들어본적이 없는 작은 마을 외곽에있는 여관에 머믈고 있응 때였는데
(이집의 요리는 절품이었다. 세 종류의 와인, 두종류의 파스타, 두종류의 메임디쉬 와 두종류의
디저트가 나오는 코스의 요리를 거침없이 다 먹어치운 정도라면 알만하지 않은가 *하루끼씨는 외소함
역자주) " 맛이 좋은 와인을 파는 와이나리 어디 없을까요 ? " 하고 물었더니, 주인은 나에게
" 어느정도의 양 이냐고 묻는다 " 한타스 정도라고 대답했더니, 그 정도라면 살만한 곳이 많지 않다며
작은 포도주 집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이곳에서는 소매는 하고 있지 않지만, 그 정도의 양 이라면
팔 것입니다 한다. " 이노치엔티 " 라고 하는 집인데, " 후랑코 " 로 부터 소개 받았다고 하십시요. 실은
내집이 그의 이웃 입니다. 그는 낮이면 포도원을 도라보고 있을 테니까 , 저녁나절이되면 집에
돌아 올것이니 일곱시가 되면 찾아가 보라고 하며, " 이노치엔티 씨의 집 약도를 그려 주었다.
그러면서 , " 정말 좋은 사람 입니다. 몇대 째, 와인 만들기를 계속한 집안 인데 하여튼 열씸인
사람입니다. 매일매일 포도원을 돌아다니며 포도에 대한것만 생각 하니까요, 대체로 집에 없단다
다른곳에도 포도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좀 바쁜 사람 이지요. "
일곱시 경, "인노치엔티 씨 집에 가 보았떠니 말 듣던대로 포도원을 돌다가 막 돌아온 차림이었다.
집은 그냥 보통집으로서 듣지 안았드라면 도저히 포도주를 제작하는 집이라고는 보이지가 않았다.
" 인노체인티" 씨 는 머리가락수가 적은 편인 온후한 감을 주는 , 지방사립대학 선생과 같았다.
후랑코 씨에게 소개받고 와인을 사러 왔다고 햿더니, 그는 슬픈 표정을 한다. 처음에는 와인을 팔
생각이 없는것이 아닌가 했는데, 말을 들어보니, 그가 자만하고 있는 회심의 명작 와인이 막 팔려
나갔끼 에, 더 이상 그것을 제공할수가 없어서 그래서 슬퍼 했다고 한다. ' 최고의 밭에서 최고로
좋은 해에 만든 외인 이 었는데,,,,, " 라고 그는 말 했다. " 좋은기회를 놓치고 말았꾼요, 이제는
없는 물건이 되고 말았으니 ,,, 마치 일개월전에 사랑하던 아내를 떠나보낸 사람 마냥 말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 했다. " 그것은 정말 유감입니다 , 만은 두번째로 좋은 와인도 상관이 없으니
양도해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했더니 " 인노치엔티 씨는 응 ! 하면서 우리들을 지하 술창고로
안내 했다. 외견은 보통 집 같았는데 지하실 넓었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나머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 오페라의 아리아 카쎋드 테이프가 걸려 있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매일
와인 만들기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는것 같았다. 지하실은 습기가 있어 서인가 곰팡이 내음이 난다.
여러가지 이름모를 기계들이 있고, 다루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 자 ! 와인 테이스팅 을 해 봅시다 "
그는 말 했다. 그는 우리들에게 지하실을 둘러 보이고 뒷뜰로 안내 했다. 뒷뜰로 부터는 저녁노을 속의
토스카니 의 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단한 풍경이다. 구능도 보인다. 그사이로 보이는 호수들이
띄엄띄엄 점같이 보인다. 구름이 낫게 드리운 고요한 구능 위에는중세의 성벽도 보인다. 어디까지나
계속되는 밭과 포도원. 저것이 내 포도원입니다. 손가락질하고있는 그의 얼골에는 지복으로 꽉 차
있었읍니다. 이것을 보고 있는 나는 이사람 정말 포도주 장인이 틀림없구나 생각 했다. 테이스팅 이라
해서 쪼곰 쪼꼼 입에 물고 맛을 보게하는 그런 테이스팅은 아니다. 그때 그때마다 새병을 꺼 내 온다.
그리고는 커다란 잔에다 찰랑찰랑 채워준다. 내온 술을 냉기면 안되지 하는 생각에 결국 세병 전부를
마셔 버렸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만든 술은 이타리아 국내에서는 시판되지 않는다고 한다.
칼리포니아, 라든가, 오스트리야 에 수출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타리아 에서 시판 하기 위해서는,
등급심사에 통과 해야하고, 세금, 판매루-트 마저 확보하여야 하기 때문에 " 인노치엔티" 씨 와 같은
개인 포도주 제작자들에게 는 이런 일들이 골치 아픈 일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대부분의 업자들은
계약제로 외국에 수출하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아는 이들에게 팔고 있는 것 같다.
시음했던 와인들은 만든 장본인이 " 마니악"이라서 인가, 넋을 빼 놓을 만큼 대단한 것들이었다.
정확히 말 해서, 그 근처의 어느것의 " 기안티 크라시코 " " 리세루 봐" 같은 것들은 눈에도 차지 않을
것 처럼 좋았다. 두번째 최고의 와인 맛, 내 넋을 뺴 놓은 그 맛의 여운이 혀 끝에 남아 맴돌고 있다가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간다. 이것이 두번째 최고의 와인 맛 이라는데, 그러면 첫번쨰의 맛은 어떤것이
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외에도 하나 더 적 포도주를 맛 보여 주었다. 이것은 앞의것 보다 는
과일향이 진하게 느껴왔다. 모챠르트의 음악에 비추어 볼때, 이 비유가 타당한지는 몰라도, 전자가
부다페스트현악 4 중주단이 연주하는 퀘텍 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람바르도와 스탄이 연주하는 후룻
퀘텍 일것이라는 감이 든다. 이것은 와인의 맛이 둘 다 좋았던 그때의 기분에서, 갑 을 이라는 렛데루를
부쳤을 것이라는 실감이 었다. 그러나 그 중 한병만 고르라면, 나는 전자를 골랏을 것이다. 비록
이 와인이 나의 반평생에 있어서 절대로 최고 의 것이 아니었을찌라도.
한가지 절대로 이ㅉ어 버려서는 안되는 " 인노치엔티 " 씨의 봐인 싼토 , 이 와인은 디저어트 와인 인데,
그 뒷맛은 멋있고, 훌륭 햿었다. 콕크에 남아 있는 봐인 싼토의 맛 만으로도 즐거움은 충분 했다.
인노체인티 씨 의 와인은 정말 대단한 것이 었다. 와인에는 셋고 ( 辛口 가라그찌, dry) 와 도루치에
(甘口 아마구찌, Sweet) 가 있는데, 나는 전자가 더 맛이 있다고 느꼈다.( 인노첸티의 말에 의하면
후자가 오소독스의 맛 이라고는 하고 있지만) 내가 봐인 싼토 가 좋다고 하니까, 다시한번 슬픈 표정을
한다. 팔고싶지 않아서, 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 실은 술값이 비싸서 한다 "어느정도 인데요 우물쭈물
하며 물었더니 " 한병에 1000 엔 정도 됩니다" 한다. 이런저런 두어시간 잔을 기우리며 외인에 관한
토론을 한후, 와인 18 병을 쌌다. 이것을 값을 치니 약 일만 엔, 세금을 뺐다고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싸다. 그 자리에서 다루로부터 병에 옴겨담고, 코크로 틀어 막는다. 라벌을 척 부치고는 상자에 담아
주었다. 그는 이 일을 하는동안 히죽히죽 웃음을 잃지 않고 즐거우ㅓ 하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와인이
이방인의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을 정말 즐거워 하는것 같았다.
나 혼자의 생각이지만, 이런 일편단심의 장인기질의 사람들과 때때로 맞난다는것은 이타리아 라고
하는 나라의 좋은 면이라. 이나라에는 이기적인 놈들이 많지만 ( 정말 많다 ) 일부의 사람들은 실로
착실하게, 정직하게 일 하는 사람들 이다. 그들은 혼자서 묵묵히 물건들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고 있는 것들은 생활의 慈味같은 것들이 스며 들어 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있기 떄문에,
이타리아 라고 하는 나라가 무어니 무어니 해도 매력이고, 그것이 그들의 저력인 것이다. 일본과같이
주위에 신경을 쓰며, 남이하는일을 흉내내는 사회와는 다른 마음 갖임이 하나 더 있다. 일부러
" 토스카니" 까지 와인을 사러 왔던 일에서, 이런 凱歌(개가)를 올릴 줄이야. 끝
* 일본과같이 주위레 신경을 쓰며,남이하는 일을 흉내내는 사회와는 다른 마음 갖임이 있다는 것임이
하나 더 있다 . 라고 한 번역에 유감이 있어, 여기서 아래와같이 정정 하여 작가가 말하려 했던
참 뜻을 부각시키려 한다. 원문에 있는 橫並(요꼬나라비, 옆으로 줄을스다 라는 뜻) 을 직역해버린
탓이다.
* 정정;
" 이타리아 인들에게는 일본인에게서는 거이 찾아볼수 없는 인간이 본래 갖이고 태여난
자유분망한 창조성 心根(마음씨) , 하나를 더 갖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활달 자재하게 행동하는
정신이 결여되기 때문에 ." 로 .
"
*
2013.07.28 00:00
Tuscany에서 Chianti 너무 잘 마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Chianti "Classico"로..., 형님! 더불어, 일목 요연한 개략 지리/역사 까지, 곁들여. 따로 계속, 올리셔도 아주, 좋겠습니다.
2013.08.23 20:51
BOOK REVIEW: New Murakami novel
story of man who tries to overcome his past
April 12, 2013
By CHIAKI
YOSHIMURA
Haruki
Murakami’s new book is the tale of a man who tries to overcome his sense of
loss and isolation, which has accumulated in the dark part of his heart.
It is
the story of a man who looks back on his past and tries to rediscover the
meaning of life.
“Shikisai
wo Motanai Tazaki Tsukuru to, Kare no Junrei no Toshi” (Colorless Tsukuru
Tazaki and His Years of Pilgrimage), Murakami’s first long novel in three
years, hit bookstores on April 12.
Like
many of Murakami’s previous works, especially the three novels of his initial
years as a novelist (“Hear the Wind Sing,” “Pinball, 1973,” “A Wild Sheep Chase”),
his newest book has an impressive beginning.
“From
July of his sophomore year at college to January next year, Tsukuru Tazaki was
living while mostly thinking about dying,” reads the strong opening sentence of
“Shikisai wo Motanai Tazaki Tsukuru to, Kare no Junrei no Toshi.”
The
protagonist, Tsukuru Tazaki, had four close friends when he was a high school
student. Their family names all had kanji characters for colors, such as “red,”
“blue,” “white” and “black.” Tazaki’s family name had no kanji characters for
colors. Because of that, he felt a “subtle sense of alienation” and anxiety.
Apart
from the four, Tazaki left his hometown and enrolled in a university in Tokyo.
Then, suddenly, he was told by the four that the friendships were over. Unable
to find any reasons why his friends abandoned him, Tazaki suffered a powerful
sense of loss and isolation. As a result, as the beginning of the novel reads,
he got caught up in “longing for death.”
As he
looks back on his life, the 36-year-old Tazaki works as an engineer, designing
railway station buildings. His parents are wealthy. On the surface, he appears
an affluent single man. However, the long ago rejection by his friends has left
him emotionally scarred.
Tazaki
develops feelings for a woman, and when he confronts her with his past feelings
of loss, she tells him, “You must face your past straightforwardly.”
That
leads him on a "pilgrimage" to search for the reasons for the
rejection of 16 years earlier.
Tazaki
feels as if he is an empty person who lacks color or personality--living as a
fugitive from his own life.
In
Murakami’s previous book, “1Q84,” the orchestra piece “Sinfonietta” of Czech
composer Leos Janacek is cited many times. In his latest novel, the music that
led Tazaki to start his pilgrimage is the "Years of Pilgrimage" piano
pieces by Hungarian composer Franz Liszt.
“1Q84”
featured characters with strong personalities, such as a killer and a guru. In “Shikisai
wo Motanai Tazaki Tsukuru to, Kare no Junrei no Toshi,” however, no such people
appear.
But I
empathize with Tazaki, who tries to overcome the emotional trauma he suffered
in the past while trying to take back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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