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마호가니 피아노 **

2015.01.16 21:36

김승훈(41) 조회 수:2190


♠.빨간 마호가니 피아노.♠



나는 아주 오래 전 이십 대 였을 때 
세인트 루이스 피아노 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우리는 작은 마을의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고 
피아노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남동부 미주리 지역의 
한 신문에 광고를 낼 때마다 
매번 어떤 할머니에게서 엽서가 날라 왔다.

할머니는 앞 뒷면 모두를 빽빽하게 다 채울만큼 
사연이 길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 어린 손녀를 위해 새 피아노 하나를 배달해 주십시오. 
빨간 마호가니였으면 합니다. 
내가 한 달에 10달러씩 꼭 지불하리다."

물론 우리는 한 달에 10달러만 받고 
새 피아노를 판매할 수는 없었다.

어떤 금융 회사도 그렇게 적은 금액으로 
할부 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엽서를 무시해야 했다.

어느날 그 지역을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엽서 생각이 나서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할머니 집을 찾아가 보았다.

 

그들은 목화밭 한 가운데 
방 한 칸짜리 통나무집에서 살고 있었다.

전화도, 확실한 직장도, 자동차도 없었다.

지붕은 곳곳에 구멍이 나서 비가 오면 샐 것 같았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그녀의 손녀는 
발에 질질 끌리는 옷을 입고 맨 발로 뛰어 놀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당신의 신용 상태로는 
도저히 그렇게 장기 할부 계약을 맺을 수 없으니 
이제 신문 광고 보고 
엽서 보내는 일은 그만 두시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일이 잘 정리가 되고 
나도 그 일을 잊고 심적 부담감을 덜었으면 좋았으련만 
할머니는 똑같은 엽서를 거의 6 주에 한 번씩 보냈다.

한 달에 꼭 10달러씩 지불하겠다는 
맹세도 빼놓지 않았다.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피아노 회사를 하나 차리고 광고를 내자 
이번엔 내 앞으로 그 엽서가 배달되었다.

 

마침내 어느날 나는 결심을 했다. 
빨간 마호가니 피아노를 트럭에 싣고 그 집으로 갔다.

나는 할머니에게 따로 사적인 계약을 맺자고 제의하고 
이자는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앞으로 52개월 동안 
한 달에 10달러씩 부쳐 달라고 얘기했다.

지붕을 잘 살펴서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만한 장소에 
피아노를 갖다 놓고 나는 그 집을 나왔다.

사실 돈을 받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합의한 대로 
할머니는 52개월 동안 꼬박 꼬박 돈을 부쳐 왔다.

어떤 때는 카드 한 장에 
테이프로 동전들을 오밀조밀 붙여서 보내오기도 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20년 동안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멤피스에 출장을 갔다가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라운지로 나왔다.

바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너무도 아름다운 피아노 음악이 들려 왔다. 
어떤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도 한 때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적이 있어서 
좀 들을 줄 아는데, 그녀의 유명 피아니스트를 뺨치는 
연주 실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음료수를 들고 그녀의 가까이에 가서 
음악을 감상하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 미소를 간간이 짓더니 
휴식 시간에 내 테이블로 와서 앉으면서 물었다.

"혹시 당신 옛날에 저희 할머니한테 
피아노를 파신 분 아니세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재차 물어 보고 
그녀의 설명을 듣고서야 나는 마침내 기억이 났다.

이럴수가, 이 여자가 그 어린 손녀였다니! 
 

그녀의 할머니는 피아노 레슨을 
가르칠 형편이 되지 않아서 
그녀는 라디오를 들으며 피아노 연주를 공부했다고 한다.

주말이면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2마일이나 떨어진 교회에 연습을 하러 갔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틈틈히 도둑 연주를 해야 했다.

할머니가 피아노를 들여 놓은 후 
그녀는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해서 
음대에 장학생으로 진학했고, 
많은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지금은 부유한 변호사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피아노가 어떤 색깔이었는지 물었다.

"빨간 마호가니였죠. 왜 물으시죠?"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훌륭한 피아노를 
한 달에 10달러씩 내고 사고 싶다고 
끈질기고 대담하게 요구했던 
할머니의 심정을 그녀가 알았을까?

결코 알지 못했으리라. 
갑자기 목이 메어 왔다. 
마침내 내 방으로 그만 올라가 봐야 겠다고 말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남자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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