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느닷없이 눈먼 돈이 생긴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쓰라”며 누군가가 1만 달러를 준다면 … 십중팔구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다음 순간 날아갈 듯 행복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 행복감은 얼마나 오래 갈까?

어느 돈 많은 부부는 아마도 그걸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지식/아이디어 공유 비영리 단체인 TED의 크리스 앤더슨 대표에게 2년 전 익명의 부자 커플이 연락을 해왔다. 200만 달러를 기부하고 싶다며 그 돈으로 사람들을 돕는 한편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연구에 기여하고 싶다는 조건을 달았다. 앤더슨은 트위터를 통해 ‘미스터리 실험(#MysteryExperiment)’ 참가 희망자들을 모집하고 지난해 3월부터 6개월 간 실험을 진행하면서,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엘리자베스 던 사회심리학 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행복하게 돈 쓰는 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던 교수는 관련 주제로 TED에서 강연한 인연이 있었다.

연구는 몇 가지 한계를 안고 진행되었다. 트위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만큼 영어권으로 제한되었고, 대부분 고학력자들이며, 실험기간이 단기간이었다는 등의 한계였다. 하지만 가나 인도네시아 등 가난한 나라부터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부유한 나라를 아우르는 7개국에서 저소득층부터 고소득층까지 다양한 경제계층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최근 전국 과학협회보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대체로 예상대로였다. 실험 참가자 300명 중 1만 달러를 받은 200명은 돈을 받지 않은 100명과 비교해 이후 삶 만족도가 현저하게 높아졌다. 이들의 행복감은 3개월 기한으로 돈을 다 쓰고 난 후에도 몇 개월간 지속되었다. 소득이 적을수록 상대적으로 행복감이 크다는 것 역시 예상대로였다. 저소득국가 참가자들은 부유한 국가 참가자들에 비해 1만 달러로 얻은 행복감이 3배나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행복의 관점에서 볼 때 저소득국 국민들에게 돈을 주는 게 투자효과가 크다는 결론이다.

던 박사의 연구초점은 단순히 공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다. 연구제목 ‘부의 재분배와 행복 증진’이 말하듯 가진 자들이 부를 나누면 지구촌의 행복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익명의 부부가 200만 달러를 그냥 가지고 있기보다 나눠줌으로써 그 돈으로 파생한 행복 총량은 225배 늘었다고 던 교수는 분석했다. 이번 연구를 발표하면서 그가 갖는 가장 큰 기대는 사람들이 부자 부부를 따라 하는 것. “200만 달러일 필요는 없지요. 훨씬 적은 돈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작은 투자로도 큰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심심찮게 접하는 일이다. 몇해 전 우체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생각난다. 온라인 세금보고가 흔치않았던 당시 세금보고 마감일인 4월15일, 단 하나뿐인 우표판매 기계 앞에 줄이 엄청 길었다. 기다리고 기다려 겨우 우표를 사게 된 한 여성이 그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우표를 20달러어치 더 사서 뒷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오랜 기다림에 잔뜩 짜증 나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일시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우표를 받은 사람들은 받아서 좋고, 못 받은 사람들은 줄이 짧아져서 좋고 … 우체국 안은 갑자기 화기애애해졌다. 그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으니 그보다 더 가치 있는 20달러는 없었을 것이었다. 효용의 극대화이다. 깜짝 우표선물 받은 사람들 중에는 훗날 이를 모방한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친절, 감사, 선행은 전염성이 강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200만 달러 나눠주기 프로젝트는 ‘효과적 이타주의’라는 최근 기부 추세의 한 예이다. 자선단체에 그냥 기부하기보다 자신이 기부한 돈이 최대한 효과를 내고 있는지 증거를 확인하면서 기부하는 태도이다. 같은 비용으로 최대한 행복감을 높이는 기부방식에 대한 연구가 대세를 이루고, 그 결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직접 현금을 전달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비영리 단체 ‘직접 주기(GiveDirectly)’가 대표적이다. 2008년 당시 MIT와 하버드 재학생들이 만든 이 단체의 목표는 현금을 나눠줌으로써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돕는 것. 케냐 우간다 르완다의 극빈층들에게 보편적 기본소득 형태로 현금을 지급한다. 조건 없이 생활비로 쓸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이들의 생활상이 어떻게 개선되는 지를 연구한다.

팬데믹 불안으로 시작해 고물가와 치솟는 이자율, 경기침체 조짐과 대규모 감원소식들 그리고 한국의 이태원 참사 소식까지 … 올해도 힘겨운 한해였다. 많은 상실과 아픔을 안은 채 추수감사절을 맞는다. 감사는 못 가진 걸 보던 눈을 돌려 가진 것을 보는 것, 내 안에 집중돼있던 관심을 돌려 이웃을 보는 행위. 시선을 돌려보면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생활고를 겪는 이웃,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인 친지, 코비드로 남편을 잃고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인 등.

우리 모두 200만 달러는 없어도 흉내를 내볼 수는 있다. 돈으로 최대한의 행복을 사는 비결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쓰는 것. 춥고 스산한 연말, 그 슬기로운 일에 동참함으로써 사회적 온기를 높였으면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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