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1 13:12
8. 꼭두각시 춤과 우리 춤의 대동적 성격.
우리 춤은 민속 연행(演行)예술의 각 갈래들과 두루 관련을 맺고 있다. 탈춤과 꼭두각시놀음에서 부터 판소리, 무당굿놀이, 풍물잡이, 농요 등이 이르기까지 춤을 떠나서 연행되는 것은 거이 없다. 따라서 우리 춤의 특질과 구실을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민속예술의 각 갈래와 더불어 자세한 춤사위의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갈래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 이루어 질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중 의 하나인 꼭두각시놀음의 춤사위를 살펴 보고자 한다. 탈놀이의 춤을 탈춤이라 하듯이 꼭두각시놀음의 춤을 꼭두각시춤이라 할 수 있다.(오늘날 꼭두각시춤은 무용학원에 다니는 4~5살 어린이들이 색동옷 입고 쪽두리 쓰고 추는 춤을 일컷기도 한다). 꼭두각시, 즉 인형의 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형춤, 꼭두각시 춤의 연원은 高麗의 악곡괴뢰(樂曲傀儡)나 만석승무(曼碩僧舞)에서 부터 찾을 수 있다. 악곡괴뢰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으나 그 춤사위는 알수 없다. 만석중놀이(승무)역시 반주음악에 맞추어 말 없이 몸짖만 했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 보면 나례도감(儺禮都監)에 속하는 탈춤과 꼭두각시놀음의 두 연극이 있었는데, 포장무대를 만들어 놓고 사자와 호랑이, 만석중을 만들어 춤을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유득공,'경도잡지' 演劇有山戱兩部 屬於儺禮都監 山戱結柵下帳 作獅虎曼碩僧舞,,,,,,,,曼碩高麗僧名, 만석중의 움직임은 두팔과 발이 각각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때리는 몸짖을 음악에 맞추어 계속 한다. 즉 만석중의 운동부위가 팔다리의 관절 만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이러한 관절이 줄을 잡아 당기거나 늦추는데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사지는 나무로 만들어 져 있으므로 쉴새 없이 뚝딱거린다고 했다. 김재철, 조선연극사. 조선어문학회,1933)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치는 동작은 승려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몸짖 때문에, 만석중 놀이는 송도명기 황진이에게 유혹당한 知足禪師(지족선사), 즉 만석중을 풍자하기 위하여 만들어 졋다는 전설이 있으나, 이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데는 무리가 있다. 꼭두각시춤은, 만석승무에서 한단계 발전한 것이다. 만석중 춤은 절간의 재승(在僧)들이 불교적 축제에서 벌아진 단순한 동작의 인형춤이라면, 꼭두각시춤은 재승들이 환속집단인 남사당패들이 전승하는 모든 놀이는 행위와 함께대사라고 하는 사설을 주고 받는 특징이 있다. 줄타기를 하면서도 재담을 주고 받고, "살팔"이라고 하는 땅재주를 넘으면서도 사설을 한다. 이러한 남사당패의 속성이 만석승무와 같이 무언의 동작을 극화시키면서 사설을 주고 받는 극적 줄거리를 지니게 한 것이다. 꼭두각시의 구성원리와 주제는 탈춤과 많이 닮아 있으면서도 독자성을 지닌다.(임재해, 꼭두각시놀음의 이해,홍성사, 1981)특히 여기서 다루려고하는 춤사위는 크게 다르다. 탈춤은 우리민속춤의 춤사위를 두루 보여주려는 다양성을 지녔으나 꼭두각시춤은 인형제작 및 조정술의 제약으로 만석중 춤사위에서 한걸음 나간 상태 뿐이다. 오히려 무릅관절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춤의 동작부위는 그만큼 제약 되기도 한다. 꼭두각시놀음에 관한 자료가 가장 충실하게 보고된 단행본에서도 춤사위에 관한 기록은 불과 몇줄 뿐이다. "춤장단은 주로 굿거리인데 인형의 동작부위가 거이 양손 뿐이어서 양손을 올렸다 내리면서 상반신을 흔드는 것으로서 풍물놀이에서 상체만으로서 추는 무동춤과 비슷 하다. 덜미인형중에 특이한 상좌 2인만이 포대괴뢰(布袋傀儡)에서 목, 양손, 허리까지를 움직여 굿거리장단의 유연한 상체의 춤을 보여준다.(신우성,남사당패 연구, 동화출판사,1974) 대부분의 인형들이 팔만 움직일수 있으므로 상체 전체를 흔드는것 외에는 양팔을 좌우로 벌려서 우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는 것이 고작 이다. 인형 가운데에는 팔이 없는것도 있어서 소매자락만 움직기기도 한다. 팔도 어깨부분 만 움직일 수 있고 , 팔굽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곡선적인 춤사위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형에 따라서 소매자락이 팔보다 길게 되어 있어 팔을 위로 올릴때에는 소맷자락이 길게 느러지게 됨으로 춤의 분위기를 자아 낼 뿐 아니라, 단순동작이지만 춤장단에 맞추어서 팔을 올리고 내리며 몸 전체를 리듬있게 움직임으로 춤의 신명이 살아 나게 된다. 단순히 팔을 좌우로 벌리고 돌아도 그 도는 몸짖이 음악적인 가락을 지니고 있으면 춤이 되고, 그렇지 않이면 동작에 지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동박삭 ; 여봐라, 나는 인간 사람과 달라서 (중략) 어찌 노래와 춤만이랴, 그러나 이미 나왔으니 네가 장단을 치면 내가 눈ㅇㄹ 떳다 감았다 하되 장단에 맞추어 부드 럽게 뜨고 감으면 만사가 여의 하나니라.
새면 ; 그것도 역시 좋습니다. 자 그러면 장단 시작 하오. (장단을 치면 동방노인이 눈을 떳다 감앗다 하다가 신명에 겨워 양팔을 벌리어 춤을 한번씩 멋드러지게
춘다) 어허, 저것 보게, 인간에 나오더니 동방노인도 근묵자묵일군.
동방삭 ; (대경하여 머리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여봐라, 이게 웬 말이냐, 내가 춤을 추었단 말이나,,
새면 ; 춤은 아니 추어도 팔은 벌리고 돌아 갔소.
동방삭 ; 내가 이미 춤을 추었다 하니 틈으로 보나 열고보나 일반이다. 노래도 한번씩 불
러 보자. (심우성, 남사당패 연구, 동화출판사, 1974)
꼭두각시놀음 대사본에는 춤을 추는 대목이 많지만, 춤동작이 구체적으로 묘사 된 부분은 위의 대목 뿐이다. 동방삭의 춤은 눈을 떳다 감앗다 하는데서 시작 한다. 예사로 눈을 깜빡이는 것이 아니라, 장단에 맞추어 깜빡이면 그것도 하나의 춤인 것이다. 그러나 춤의 신명은 눈깜빡이 춤에서 머물지 않는다. 온몸으로 춤의 신명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확산 되는 것이다. 수도승인 동박삭이도 이러한 신명을 주체할 수 없어서 부지중에 양팔을 벌리고 춤을 멋들어 지게 춘 것이다. 이를 본 "세면"은 크게 놀란 동박삭을 위로 하자, 춤은 아니추고 팔만 벌리고 돌아 갔다고 하는데도, 춤을 금기로 여기는 동박삭 자신은 자신이 스스로 춤 춘것을 이정하고 만다. 춤 춘사실을 근거로 노래까지 부르며 놀이판에 완전히 동화 되어 버린다. 동방삭의 춤과 노래는 세속적인 삶에 눈을 뜨면서 부터 확인한 인간의 놀이 본능이며,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면서 유발된 삶의 구가요 환호 이다. 속세를 떠난 수도 생활보다 놀이마당에서의 춤이 동방삭으로 하여금 한층 더 높은 단계의 삶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다., (쿠르트 쨔스 저, 김매자역, 세계무용사에서, 춤이란 본질적으로 높은 단계의 삶 일 따름이라고 하면서, 이것이야 말로 춤의 초괄적인 으미를 꼭 찝어 낸 말아라 했다) 우리 춤의 기본은 꼭두각시 춤의 주된 사위처럼 양손을 좌우로 벌리는데 있다. 이 상태에서 그대로 돌아가거나 앞 뒤 좌우로 장단에 맞추어 이동하면 춤이 된다. 여기서 팔을 조곰 늘어 트리거나 위로 비스듬이 치켜 올리면 춤에 변화가 주어 진다. 어깨를 좌우로 갸우뚱 거리며 가락에 몸을 실어도 춤의 신명이 살아 난다. 보다 강한 변화는 팔을 좌우로 편 상태에서 팔굽을 굽혀 안으로 모았다가 다시 폈다가 하는데서 발생 한다. 이러한 팔굽 움직임이 좌우로 번갈아 가며 아루어 질때, 우리 춤의 아름다움이 들어 난다. 물론 이러한 팔의 움직임에 따라 무릅을 굽혀가며 몸 전체가 가락에 실리면 더욱 아름다운 춤이 되고, 팔의 움직임에 상응하려는 다리도 들어 올렸다 내리면 활달한 남성들의 "몽두루춤"이 되는 것이다. 팔을 좌우로 벌리거나 위로 비스듬이 처든 상태에서 변화를 주는 춤사위가 우리 춤의 기본이라는 근거는 토우(土偶)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된 한쌍의 토우를 보면, 하나는 두팔을 좌우로 벌리고 머리를 뒤로 젖히며 입을 크게 벌려 노래를 부르는 입창상(立唱像)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두 팔을 좌우로 올려 춤을 추고있는 무용상(舞踊像)을 하고 있다.(이은창, 신라토우에 나타난 민속, 경주사, 1981) 이처럼 우리 춤의 일반적인 특징은 토우나 인형으로 춤이 묘사된 경우에도 두팔을 좌우로, 또는 위쪽으로 들어 올리고 추는데 있다. 이른바 "스텝"이라고 하는 발 동작이나 다리 움직임에 대해서는 춤돈작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그러나 양춤은 이와같은 하체의 동작이 춤의 기본인 사교댄스 또는 고고와 같은 대중춤이 모두 스탭 중심 이다. 그들에겐 스탭을 익히는 것이 곧 춤을 익히는 것이다. 춤은 크게 상체를 중심으로 한 춤과, 팔을주로 움직이는 춤과, 다리를 주로 움직이는 춤, 팔이 위쪽으로 향해 있는 춤과 아래쪽으로 향해 잇는 춤으로가를 수 있다. 이렇게 갈랐을 떄, 앞쪽의 우리춤이 종교적 춤이라면 뒤쪽의 춤은 성적(性的) 춤이다. 우리 춤의 전통은 앞쪽에 있다. 뒤쪽의 춤인 양춤이 성적인 문란을 조장하는 쌍쌍춤이라면 우리춤은 종교적 의식을 활성화 하면서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대동춤 이다. 짝끼리 몸을 마주한 채 손을 맞잡고 허리를 부틍켜 안은 상태에서 추어지는 쌍쌍춤은 자연히 스탭에 의존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럿이서 어울려 팔을 크게 벌리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춤은 그 양식상 쌍쌍춤을 이룰 수가 없다. 그야말로 "덩실덩실" 추는 것이 우리 춤의 본디 모습 이다. 우리 춤의 본디 모습을 되 살리고 건강하게 발휘 되었던 우리 춤의 본디 구실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이제 우리 모두 양춤의 관중석에서 박차고 일어 나야 겠다. 그리고, 우리 마당 한 가운데로 나아가 하나로 어울리자.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덩실덩실"우리 춤을 추는 춤꾼이 되어 보자.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92 | "유식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4.11.10 | 0 |
191 | 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4.11.03 | 4 |
190 | 유식30송(唯識三十頌), 현장삼장법사 역(玄奬三藏法師 譯 | 김일하 | 2024.10.13 | 7 |
189 | "유식30송" 현장삼장법사 역, 아랫몫 깊숙이 숨어있는(奧深) 인격의 밑바닥 | 김일하 | 2024.10.27 | 7 |
188 | 唯識三十頌(유식 30 송), 玄奬三藏法師 譯(현장삼장법사 역) | 김일하 | 2024.10.05 | 9 |
187 | 阿賴耶識, 種子生現行 그 3 [1] | 김일하 | 2024.08.27 | 11 |
186 | 阿賴耶識, 種子生現行 그 2. | 김일하 | 2024.08.25 | 12 |
185 | 2. 阿賴耶識의 種子生現行(종자생현행) | 김일하 | 2024.08.21 | 13 |
184 | 제 2장 심왕(心王), 8식 3능변(八識 三能變) | 김일하 | 2024.08.10 | 15 |
183 | 아뢰야식(阿賴耶識), 종자현행(種子現行)그 4 | 김일하 | 2024.08.31 | 15 |
182 | 한국의 민속예술, 한국국악 그 3. [2] | 김일하 | 2023.02.08 | 17 |
181 | 한국민속예술,구전자료로 전하는 민속극 2,1 ; | 김일하 | 2023.01.06 | 18 |
180 | 죽음을 위한 교양(문화) [2] | 김일하 | 2022.05.05 | 19 |
179 | 三車和尙(삼차화상)의 전설 | 김일하 | 2024.07.27 | 19 |
178 | 마음의 단련(Training of mind) | 김일하 | 2024.07.28 | 19 |
177 | 2). 阿賴耶識의 "現行種子" 그 1. | 김일하 | 2024.08.13 | 19 |
176 | 죽음을위한 교양(문화,공부) [1] | 김일하 | 2022.06.22 | 20 |
175 | 한국민속예술(韓國民俗藝術) | 김일하 | 2022.10.23 | 20 |
174 | 한국민속예술(韓國民俗藝術) | 김일하 | 2022.10.15 | 21 |
173 | 한국의 민속예술 , 민속극, | 김일하 | 2022.12.07 | 21 |
https://youtu.be/fpIJkfMLtL0
https://youtu.be/_14Y8vdSMz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