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車和尙(삼차화상)의 전설

2024.07.27 12:29

김일하 조회 수:19

2. 三車和尙의 전설,

  각설하소, "述記"를 저작한 慈恩大師는 法相宗(법상종)의 종조(宗祖)라고 추앙 받는 사람이다. 日本의 唯識學은, 明治시대까지 慈恩大師의 교학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法相唯識이라고도, 慈恩敎學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法相宗의 興福寺(흥복사), 藥師寺(약사사)(奈良). 京都(경도)의 淸水寺(청수사) 등에서는 대사의 명일(命日)11월13일을 慈恩會라 부르며, 옛날식 대로, 엄숙한 論義(논의)가 행해 지고 있다. 그것은 同學鈔(동학초)의 재현 같은 것이다. 활짝 열어놓은 法堂에는 12월 중순의 야기(夜氣)가 춥다. 어렴풋한 촛불 주변에서는, 어떤때는 예리하게, 어떤때는 순순히 몇시간에 걸친 논의가 계속 된다. 이해를 통하여 佛敎의 진수에 육박하려고 하는 기백(氣迫)에 충만 되어 있다. 검소하지만 품위가 높은 식전(式典) 이다. 그런 慈恩대사에게서 唯識의 성격의 일면을 상징하는 재미있는 두개의 전설이 있다. 그 하나는, 慈恩대사가 玄奬三藏의 제자로 들어갓을때의 이야기 이다. 대사는 어릴때부터 척 보기만 해도 똑똑하게 보이는 소년이었던것 같다. 17세 때 였다. 이것을 알아 차린 玄奬三藏은 어덯게하든 소년을 제자로 만들려고 했다. 그때, 소년은 玄奬三藏을 향하여 이렇게 말 했다고 한다. "欲을 斷하지 않고, 葷血(훈혈,매서운채소훈 혈을 茹(먹을여)하고, 中을 지나서도 먹게 하면, 이 세가지를 허락하신다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훈혈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전에는 없는 단어이므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부추와 마늘과 고기를 다져서 찐것으로, 오늘의 젊은이들이 즐겨 먹고있는 만두 종류가 아닌가 생각 된다. 즉 욕심을 끊으라 하지 않고, 훈혈을 먹울 수 있게 하고, 오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이 세가지만 허락한다면 제자가 되어도 좋다고 했는데, 이 세가지는 승려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삼항목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괴롭히는 말이 었다. 그럼에도, 玄漿은 허락하고 그를 제자로 삼았고, 그후 그는 점차 佛智(불지)에 도달 했다고 알려져 있다. 두번째의 전설은, 출가한 후의 일 이다. 慈恩대사는 앞에 차에 경전을 싫고, 가운데 차에는 자신이 타고, 세번째 차에는 가기(家妓), 여복(女僕), 식선(食膳)을 싫고 대로를 왕래 했다고 했다. 家技는 遊女, 여복은 시녀, 식선은 식물이 었다. 이후, 이를 가르켜 대사를 三車和尙이라고 불렀다. 첫째 전설도 두번째 전설도 다 "宋高僧傳" 卷四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 이다. 진위 사실은 물론 알 수가 없다. 옛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찌도 모른다. 그러나 조작설이라 할찌라도 이것은 대체로 唯識에 이해가 있는 사람의 작화(作話)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말 하는것은, 이 둘의 전설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이야기가 안되는 것으로 행실이 나쁜 인간의 현실자세이기 때문이다. 三事(삼사)를 허락 해 달라는것은, 세상의 욕망과 생활습관을 그렇게 간단하게 버릴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올바른 행위를 안 하겠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번째, 三車和尙의 경우는, 그런일이 실제로 있었던가 아닌가는 알 수 없으나, 결국 중이라고 하는 자가 여자와 식물을 따르게 하며, 왕래를 했다는것은 무엇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생각 해 보면, 남자에게 여자와 음식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뿌리(根深, 마음 깊은곳에 숨어 있는 근원인 것이다.) 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것은 보편적인 욕망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현실의 인간의 자세가 솔직하게 재촉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慈恩대사가 행실 나쁜중이엇다는것을 말하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慈恩대사의 가르침이, 그러한 인간 공통의 기본적인 자세를 확실히 알아서 구축되어 있다는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고한 것이라고 이해가 되는것으로 생각하면서, 그렇게 해석해야 된다고 사료 된다. 唯識이란, 성욕이라든가, 식욕이라든가 하는 인간 본래가 가지고 있는 진흙탕 같은 성격에 눈을 돌린다든가 하면서, 그것들을 딱 끊어 버리지 못하고 그곳에 발이 묶여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佛敎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인간 존재는, 결코 옳바른 짓이나 체제에 맞는 미사여구로 호도하는것과 같은 짖은 하지 못 한다. 그저 거기 머물러서 자신의 내면을 떼어 내려고 해도, 떼어 내지 못하고, 그렇게 밖에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짓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렇다는 것이다. 더렵혀 진 자기가 있다. 그것을 응시하면서, 그것에 대한 것들을 없애 버리지 않고, 어디에 청정한 것이 있단 말이가. 현실의 허망성, 현실의 오염성, 그것을 唯識은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현실에 굴러 다니고 있는 자기가 비쳐지고 있다는것은 도대체 무슨 일 인가, 더러워 진 것인가 아니면 자기가 더러워 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 말인 것인가. 더러워 졌다는 자체는 자기가 더러워져 있다는 것을 알지못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더러운것에 더러워졌다는것을 알기 위해서는, 더러워지지 않은것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三車和尙 맨 앞차에 실린 경전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 더러워진 자기와 깨끗해진 자기와의 가운데 慈恩대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더러워진것을 무시하고 청정으로는 가지 못한다,,,,,,,여기에는 거짖이 있 다,,,,,,,,, 있는것이 아니라, 청정함이 없어졌기 때문에 더러워진 흙탕속에빠져 버린다,,,,,,,,여기에는 頹廢(퇴폐)만이 있다,,,,,,, 는 것도 아니다. 오염과 청정과의 정가운데서 그것을 포섭하는 慈恩대사의 예지가있다. 이러한 것을 전설은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 실은, "宋高僧傳"은, 뒤에서, 慈恩대사의 행위를 안 文洙菩薩(문수보살)이 늙은이로 분장 나타나서, 그의 非(아닐비)를 (금할금) 했고, 대사는 " 前非(전비)를 悔(뉘우칠회)하고, 유연하게 혼자 살면서, 이것 역시 㞎語(파어)". (㞎語=축연에서 마시는 술과 같은 맛이 나는 언어). 文洙보살의 지적으로, 慈恩대사는 가기, 여복, 식찬을 실은 차는 물론, 중으로서 간직하여야 할 경전 마저 버리고 혼자서 지냈다고, "宋高僧傳"은 쓰고 있다. 많은 뜻이 담겨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 한다. 여기에는, 汚泥(오니,더러워진 흙탕물도)도, 淸淨(청정)도 버렸다.고 하는, 또 한번 뛰어 넘은 높은 핵심적 경지가 있다. 어쨋던, 여기서 확실히보아넘겨선 안 될 것은, 唯識이라는 佛敎가 현실의 인간의 무섭고, 싫고, 교활한 자태를, 어떤 작은 용서에도 타협을 허용하지 않고, 투철한 눈으로 응시하는 佛敎라고 하겠다. 이렇게 생각 해 볼때, 이런저런 인간들이 모이게 되는 자리의 만담가 馬喬(마교)가 唯識의 책을 읽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㞎語로 떠 오른다.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