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3 12:25
2. 我(아). 法(법)의 種種相(종종상, 여러가지 모양),
由假說我法 假에 由(말미암아유)하여 我法 있다고 說(말씀설)한다
有種種相轉 種種의 相으로 轉(구를전)하게 된다는것.
彼依識所變 彼(저피)는 識의 所變에 연유 한다(因緣由依(인연유의)).
사실이란것은, 이런저런 여러가지 緣(인연)에 의하여 생긴 假(가짜)라는 존재와 인식이라고 하는것을 알면서도, 실체적인 我(나)와 法(법)이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러가지 상모(相貌,모양)가 한없이 전개 된다. 삼나만상 모두가 남김없이 그렇다.그 무수한 상모는 식(識)에 의해 생겨난 것들이다.
1). 假에 由(연유)하여,
"假에 由하여"라고 읽는 식에는 부자연스런데가 있다. 가설(假說)이라고 부쳐서 읽는 식이 범어(梵語,싼스크릿드어)원전에서 볼 때 타당하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는 "假에 由 하여" 라고 읽어 왔다. 선철(先哲)들이 그렇게 읽어던것에는, 그런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唯識佛敎(유식불교)에의 깊은 이해에 기반하여 그렇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해란것은 무엇인가.
"新導成唯識論(신도성유식론)" (法隆寺 刊법융사 간)에, "첯째는, 언설(言說)의 假", "두번째는, 소설(所說)의 假" 소설(所說)의 사전적 해설은, 소설, 말하는 바, 설명하는 바 라고 하는 방주가 나와 있다. 언어의 그 의미 내용은 가짜라는 것이다."假"라고 할때의 假는 인 연에 의하여 생겨 난 것임으로, 유식불교(唯識佛敎)에서는, 언어를 조건에 따라서 정해지는 상대적인것, 즉 인연생(因緣生)이라고 하는 언어관이 있다. 그것을 "名言(명언)" 이라고 부른다. 생각해 볼때, 언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의 약속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장소에 따라서 변 한다. 그 언어의 내용도 결코 절대적인것이 아니라는것. 그래서, 그것을 "假"라고 말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일상 사용하는 언어를 알게 모르게 고정화 하고 절대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전"이라고 하는것은, 말의 절대화, 고정화의 상징 이다. 수만어라고 하는 말들이 절대적 의미를 부여 받으며 실체화 되고 있다. 그럼에도 "사전"의 말이 그냥 그대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들은 대체로 희노애락(喜怒愛樂)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말들 이다. 예를들어, "자동차" 라는 말 하나를 채용해 본다하더라도, "사전"에는 "보통 4개의 바퀴를 가지고, 발동기의 동력으로 rail 없이 달리는 차"라고 쓰여 있지만, 일상사용되고 있는 자동차라는 말에는, 그러한 무기질같은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를 좋와하는 소년이, 반해버린 신형 sport car를 보면서 탄식하는 말과,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보고, 놀고있는 아이에게 "자동차 ! " 라고 소리치는 어머니의 말과는 확실히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흔히들 그런것은 생각치 않고, 말의 의미를 알려고 할 때는 주저없이 사전을 펴 든다. 사전을 열어 보면 그 의미를 알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 이렇게 실체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假"라고 하는 말은, 이와같이, 말과 그 의미에 있어서그것을 "假"라고 할 수 있고, 처음부터 그것이 "假"라는것을 알면서도, 웬지모르게실체화하고 있다는것을 시준(示晙), 실체화된것을 "我" "法"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假에 由하여" 라는 표현은 "假"라고 하는것이 자각되어 있다고 하는것을 의미하고 있기때문에 결연히, 종교적 입장에 서서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述記(술기,성유식론 주석서)"는 "假"에 대하여, 1, 無體隨精假(무체수정가), 2. 有體施設假(유체시설가)라고 하는 "假"의 분석을 기술하고 있다. 1. 은, 환상, 환각 이라고 하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망상 이라고 부른다. 2. 는, 여러가지 조건의 결합에 의하여 거기에 있게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다고 하는 "衆緣所生(중여소생)"이라고 하는 점에서 말 하면, 확실히 "假"가 된다는것을 지적할 수 있다.
2). 我(나라는것에)에 관하여,
第一頌 一句에 관하여 "成唯識論(성유식론)"은,
(1). 我 라고 하는 주재(主宰)
(2). 法이라고 하는 軌持(궤지,수례바퀴 궤, 가질 지)라고 정의 하고 있다.
"主(주)" 라고 하는 것은, 중심이란 뜻, 사무적이라는 의미. "宰(재)"는, 전무(專務)를 장악 한다. 사물의 처리, 조처를 한다(manage all by oneself). 와 같은 의미. 때문에 "주재"란, 자유자재로 사물을 처리하는 주체라고 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述記"는, 국왕은 자재이기 때문에, 대신이 나누어서 결단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국왕은, 자기의 의사를 자유자재로 행동하게 되지만, 대신은, 그 의사를 받아 사무를 실행 해 나가는것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독재체제라든가, One man체제를 연상하면 되겠다. "성유식론(成唯識論)" 은 "我" 에 관하여 두가지 我說(아설)"을 소개 하고 있다. 1.은, 우리들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는 我 이고, 2.는, 초월적인 실체로서의 我 이다.
내재적인 "我" 라는것은, "有精(유정)", "命者", "預流(예류), "一來(일래)" 등과 같은 말로서 나타내고 있는것과 같이, 우리들은, 인간을 포함하여 생물에게 그들 나름대로의 생물이라고 하는 통일체가 내재하고 있다고 어덯게든(somehow)생각하고 있다. 어렷을때의 자기와 오늘의 자기와의 사이에는, 자기자신이라고하는 통일체가 일관하고 있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자기가 여기에 생존 해 있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을 내적 아설(內的我說)이라고 한다. 2.의 초월적 실재(實在)라고하는 아설(我說)은, "성유식론"에서는,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 하면서,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그렇게 보려고 하는 방법이, 유식불교가 형성되었던 시기의 큰 사조였기 때문이 었다. 말하자면, 외도(外道,불교이외의 사조)의 我論(아론)이었고, 거기에 대한 비판은 잠시 보류 하기로 하고, 소개되어 있는 我說은 다음과 같다. ,
제 일 군,
1.상주하면서, 허공에 편재하고있는 我
2.상주이기는 하나, 그 크기의 我(big haevy)는 부정인 我
3.상주이기는 하나, 그 크기가 극미하여 전신 속을 기세좋게 움직이며 돌아가는 我(극미=물질의 최소 단위)
제 2 군,
1. 신체와 일체인 我(卽穩(즉온)의 我)
2. 신체와 별체인 我(離穩(이온)의 我)
3. 신체와 일체는 아니고 또 별체도 아닌 我(非即非離穩我 비즉비이온아)
당시 주장되어 있던 여섯종류의 아설9我說)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 1 군의 아설과 다른 아설들을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 1 군의 1.의 아설은 초월적 실재자로서의 我인데, 다른 것들은 내재적인 아설인 것이다. 제 2 군의 2.의 아설은, 초월적인것 같이 보이지만, 그 분류의 행동거지(방법,수단)로 부터 신체와의 관계에서 포착되어 있는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내재적아설이라고 이해하게끔 한다고 생각 된다. 인도의 사상사를 보게 되면, 초월적 실재자를 "부라프만" 이라고 하고, 내재적 我를 "아트만"이라고 한다. 그 일체감 즉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것을 같이 깨닫았다는(會得,회득)것을 구극의 구조라고 하는 구조의 종교가 주류였다고 알려져 있었다. 말할나위없이, 불교는 초월적이던, 내재적이던 불변이라고 하는 실체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개체의 내면에도, 초월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불변이라고 하는 실체는 없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 의 셰계의 진상(眞相)이기 때문이다.
3. 法에 관하여,
"法"은, 종합불교대사전에 의하면, "任持自性. 軌生物解(임지자성, 궤생물해)"라고 하는 전통적 정의라고 쓰고 있다. (1)대부분의 존재 (2)행위의 규범 (3)성질, 속성 이라고 하는 세가지 의미를제시하고 있다. "岩波(암파)불교사전" 에서는 다음과같이 정리하고있다. (1) 법직, 정의,규범 (2) 佛陀(불타)의 교법 (3) 德의 속성 (4)因(인) (5)사물(事物) 등의 다섯 종류가 있다 고 되어 있다. "法"이라고 하는 대단히 어려운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任持自性"이라는것은, 혼자만(獨者)의 본성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일면이고, "軌生物解"란, 독자의 본성을 가지고, 개변(改變)하면서 일정한 이해의 기준을 갖인다고 하는 일면 이다. 대부분의 존재는 ,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 성질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다. 책은 책이라고하는 성질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슷한 note 라고 해도 그것은 책은 이니라는 것이다. "任持自性"의 일면 이다. 그 때,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도 "책"이라고 하는것은 이런것 저런것이라고 하는 기준에 맞추어 판단을 내린다. notr는 이러저런 것이라고 하는 기준에 의하여,,,,,,, 이것은 책이지 note는 아니라고 판단 한다. 이와같이 사물의 이해의 기준이 되는 일면이 "軌生物解" 이다. "任持自性"이 직접 사물을 가르키는데 대하여, "軌生物解"는 관념적 영역에 속 한다는 것이 되겠다. 그럼에도 이 두면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것이라고 하는 佛敎의 존재론이고 인식론 이다. 사물은 인간의 관념적영역을 떠나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관념을 구체적으로 사물로서 거기에 현현(顯現)하고 있다. 삼나만상(森羅萬相) 대부분의 것들이, 인간의 "마음"이 그것들을 이것 저것이라고 인식한 것에 한(限)한다는 것이고, 그 이상의것은 우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우리들의 '마음"은, 구체적으로는, 산이든가, 강이든기, 책이라든가, note라고 하는 형상, 또는 희노애락(喜怒哀樂), 애증호악(愛憎好惡)과 같은 감각 감정 또는사고(思考), 판단, 상상력같은 것의 정신적 활동으로서 보고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두면에서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에, "法"이라고 하는 것이다. 佛敎에서는, 영원불변의 진리는, 유한(有限)의 구체적 사상(事像)의 존재법칙 그것이라는 것으로서, 진리와 사상(事象)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때문에 "法"은 진리를 나타나게 되고, 진리의 언어화(言語化)인 佛陀(불타)의 교설도 또한 당연히 "法" 이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된다. 상당히 어려운 표현이 되었는데, 나는 "唯識三十頌"을 이해하려고 하는 본서의 목적과 함께 "法"을 A.진리, B. 불타의 가르침, C. 의식상에서 얻은 일체의 것, D. 말, 가치관, 문화 같은것들을 받침목으로 하려고 한다. "假"가 되는 존재와 인식상에는 있지도 않는 실체적인 "我" "法"을, 우리들의 "마음"이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 포착(捕捉)된 것은 허상(虛像)에 불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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