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2024.11.03 12:05

김일하 조회 수:4

3. 과거를 등에 지고있는 자기, 異熟(이숙),

  "阿賴耶識(아뢰야식)"이라고 하는 제 8 識의 다른 이름은 "異熟(이숙)"이다. 이것은 인격의 根低(근저,근본)에 '과거와의 관계'를 발견 했기 때문 이다. 사람은 과거와 단절하고는 살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거를 등에 업고 과거를 가지고(据置)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일면을 포착한 것이다. "述記"는  "異類에서 성숙 한것"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즉 과거가 성질을 변화시켜, 현재로 성숙되어 현현(나타난)한 것이라는 것이다. 대체로 異熟(이숙)이라는 개념은 간단치 않고 난해 한데, 보통 "因是善惡 果是無記"라는 말로 소개 되어 있다. 선 악 이라는 인간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데, 그 결과로서 결실된 자기, 즉 현재의 자기는 無記(무기)라는 것이다. "無記"라는것은, 非善非惡(비선비악, 선도 아니고 악도아닌것)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자기는 선악 어느쪽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 성질이 善(선)이라고 한다면, 善만 있는곳에서 어덯게 惡(악)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 거꾸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惡이라고 하게 된다면, 善한 행위의 근거를 어디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건가. 인간의 전환(轉煥)이라든가, 회심(回心) 내지는 전락(轉落)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되는 한, 無記라고 하는 인간 이해의 논리적인 합리성을 가지게 되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無記이기 때문에, 어느쪽도 포함, 어느쪽으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阿賴耶識(아뢰야식)의 無記의 성질을 이야기 하면서 상세하게 알아 볼 것임으로 여기서는 이만 하겠다. 인간이 만약 본래적으로 善惡 어느 한쪽이라고 한다면, 善惡이라든가, 유전(流轉), 환멸(還滅)이라고 하는 상호모순하게 되는 행위의 근거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이론적 합리성 만의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 된다. 어쨋던, 사람이 자기의 과거를 등에 지고 살아 가고 있다. 그 과거란, 자기의 과거이기도 하지만, 선조와 인류가 밟아 온 모든것 마저를 포함 하는 것이 되겠다. 과거와의 관계로서 제 8 識을 포착하고 갈 때, 이것을 "異熟識(이숙식)"이라고 부른다. 

4. 미래를 향하여, 一切種子識(일체종자식).

  세번째로 거론 되고 있는것은, 미래와의 관계로서 포착되는 것인데 "一切種子識" 이다. "一切"이라고 하는 字(글자)를 빼 버리고 "種子識"이라고 만 말 할때가 많다. 제8 識은, "藏의 三義"에서 보았던것과 같이, 七轉識(7전식)으로 부터 투입되어 온 種子를 받아 드려 간직 한 것이다. 즉 "熏習(훈습)" 했다는 것이다. 熏習된 種子는 , 緣(인연)에 닿으면(觸) 구체화 되어 표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을 "現行(현행)"한다 라고 한다. 우리들의 모든 행위와 사고(思考)는, 모두 자기의 심층에 보관되어 있던 種子에 기인 한다. 우리들은, 자기도, 자기의 세계도 전부 자기 속에서 창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것이 미래와의 관계로 성립 된다. 미래는, 어디로부터, 누군가가 가져다 주는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 속에서 창조 해 내는 것이다. 제8識이 "阿賴耶識"이라고 불리우는 것, "異熟識", "一切種子識"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을 나름대로 제8識의 "自相" "果相" "因相"이라고 한다. 함쳐서 三相(세가지 모양)이라고 한다. "三相"은 따로 따로 있는것이 아니고, 그것은 통일체로서 살아가는 한사람의 인격의 생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가설로서 삼면으로 개방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3면을 중합(重合)하는것에 따라서 떠 올라 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지금의 인간의 경험 구조 라는 것이다. 인간은 나름대로 자기의 과거를 등에 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부정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과거의 영향력은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것일 까. 만약 결정적, 절대적이라고 한다면, 자기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창조 해 낸다고 하는 일면은 비상하게 약화 될 수 밖에 없다. 과거에 과오를 가졌던 사람은, 영구히 그곳을 탈출 할 수 없게 된다. 운명론이라든가 숙명론, 내지는 결정론 같이 불리워 지는, 과거의 영향력을 무한히 절대시 하는 견해에 빠지게 되고 만다. 이것은 타개 되어야 한다. 이 타개의 열쇄를 쥐고 있는것이 "自相"인 것이다. 현재, 지금의 경험, 즉 자기의 행동에 의해 과거가 전환 될 수 있다는것, 그것을 시준 해 주는 것이 "自相"의 경험구조라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커다란 경험속에 있는 자기가, 현재의 경험의 힘에 의해, 그것을 계속하고, 전 개 시키고, 또 역전까지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변화 한다든가 종교적 회심과 같은 인가의 전환이 포착 될 가능성은 없게 된다. 그 열쇄가 되는것이 "自相 = 阿賴耶識" "三藏"과 같은 교설인 것이다. "自相"이라는 것을 축으로 하여 과거가 변화, 현재의 자기가 변화 한다고 하는 것은, 미래와의 관계도 변화한다고 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다. 제 8識의 "三相"은, 이와같은 인격의 전환이라고 하는 각도에서 포착 되어진 인간의 진실인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그러한 경험은 어떠한 구조로서 포착되고 있다는 것일까. "유식 30송'에서는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成唯識論"은 많은 글자를 사용하며 "種子" "熏習" 論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들도 이제,  그것에 따라 경험이 이것을 어덯게 포착해 가는가를 배워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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