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4 15:42
제 1설. "本有種子(본유종자)와 "新熏種子(신훈종자) 이다.
"本有"라는 뜻은, 선험적 생득(生得)적인 일면, 즉 경험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니고, 경험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힘(力) 이다. 수태시, 이미 몸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 한다. [論]은 , " 본래적으로 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熏習(훈습)에 의하여생긴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新熏種子(신훈종자)"란, 체험에 의해 습득된 힘(力)이라는것. "本有種子(본유종자)" 란, 개인 개인이 가지게되는 소질, 능력을 강조하는 입장이고, "新熏種子(신훈종자)"는 환경의 영향을 중대시하는 입장 이다. [成唯識論]은, 이 두 방향을 겸비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本有種子"만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하느 難月(傳 불명)의 "唯本有說(유본유설이 있었고, 또 환경의 영향과 경험의 집적을 중시하는 難陀의 "唯新熏說(유신훈설)도 전해 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설(相說)속에서 [成唯識論]은"本有" "新熏"의 양편을 설정하게 되는데, 그것은 단순히 양편설을 절충통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깊은 종교적 체험의 뒷바침에 의하여 "種子(종자)"에는 각각 2종류가 있다"라고 하는 단언을 낳게되었다고 나는 보려고 한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기량이 주어졌다고 한다.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기량을 어디까지 어덯게 연마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제 2의 종자설은, "名言習氣(명언습기)"와 "我執習氣(아집습기)" "有支習氣(유지습기)" 이다. "習氣"란 범어(梵語) '봐아~사나~'의 역. [論]에서는 "種子(종자)"는 "習氣(습기)"의 이명(異名) 이다"라고 하고 있는것으로 보아, 동의어로 사용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럼에도 확실히 구별하며 사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때는, "종자" 보다는 한층 더 미세한 여향(餘香)과 같은 면을 지칭하고 있다고만 하면 되겠다. 음성이란 대체로 끝이 소멸하는것이니까, 약간 뒤에 울려오는 잔향(끊어질듯한 음성)과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되겠다. "種子"와 "習氣"가 확실히 구별되게 되는것은 "修行論(수해론)"에서 이다. 수행론을 이야기 하면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만 약하겠다 .
"習氣)는, "種子"보다 훨씬 미세(微細,자세한)한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동의어로 알고 있으면 되겠다.
"名言習氣"는, 문자 그대로 '말' '언어' 이다. 種子, 習氣는 "熏習(훈습)"된 것이라지만, 대체로 구체적으로 무엇이 熏習(훈습)되어 있다는 것인가 하면, 첫째로는 '말' 이다. "말"이란 '의미 부여이다' 의미를 가진 '말'이란, 가치관 , 문화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말"을 기억 한다고 하는것은, 실은 그 의미 부여라든가 가치관, 문화 같은것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그 축적된 가치관과 문화같은 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고 인식이나 발상, 행동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인격 밑바닥에 축적된것의 다름에 따라서, 사물을 보는 방식과 감지하게 되는 방식이 변화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도사람들에게 있어서, 간지스강의 물은 신성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저 보통의 강물일 뿐이다. 축적된 문화가 다르기 때문 이다. [論]은 이것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表義名言(표의명언)" 두번째는 "顯境名言(현경명언)"이다.
"表義名言"이란, 정확한 의미를 표시하는 말을 말 한다. "顯境名言"은, 인상, 심상(心象)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면 되겠다. [論]은, "능(能)히 경(境)을 요해(了解)하는 심(心) , 심소(心所) 이다" 라고 하고 있다. 우리들의 인식이라고 하는것은, "말"로서는 잘 표현할 수가 없다는것을 알고 있다. 그것들은, Image, 영상, 인상, 심상같은 막연한 형태의 것들로서 이미 우리들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 이다. 즉 선입관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명확한 언어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우리들의 인식활동이 정리되고 정확한 것이라고 하며 그것에 의미를 부여 하고 있다. 그러한 영역을 가르키고 있는 것이다. "表義名言(표의명언)"도 "顯境名言(현경명언)"도 다 같이 우리들의 인식활동에서 Zero로 부터 시작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준(示晙,명시) 하고 있다. 우릳들의 인식은 이미 우리들의 내측에 이미 축적되어 잇는 가치관과 의미 부여된것에 의하여 시작 된다는 것이다.
"我執習氣"는, 자아(自我)에 )기반한 인간의 행위가 축적된다는 점을 가르키고 있다. 여기에도 두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俱生의 我執(구생의아집)이고 다른 하나는 분별의 아집(分別의我執) 이다."俱生의 我執"이란, 수태와 더불어 생명의 밑바닥에 주어진 아집이기 때문에 미세(微細)한것이고, 깊은(深 것이어서 끊기(斷)가 어려운(難)것이라 한다.
"分別의我執"은, 경험의 축적이라고 하는 형태로서 인격속에 집적되게 되는 것이다 즉 후천적이라는 것이 되겠다. 이 의미는 俱生의 我執 보다는 끊기가 쉽다고하는 의미도 된다. 이러한 "我執, 習氣"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들의 인식도 행위도 Egoistice 하게 된다. 我執習氣(아집습기)에 의하여 이기적인 행위가 나타나고, 그 행위에 의하여 점점 이기심이 깊어지고, 그로인하여 Egoistic한 행위를 강화 해 간다는 것이다.
셋째번쨰인 "有支習氣"는, 인격형성에 있어서 강력하게 영향하는 것은, 그 사람의 善 惡의 행위 라는 것이다. [論]은, 이것을 2분 하는데, 1은 有漏(유루)의 善(선), 2는 不善(불선)이라고 하면서, 이 두개가 인간 인격형성에 직접적으로 커다란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不善은 惡(악)이 동의어로서 그 결과는 인격의 손멸(損滅)이 된다. 즉 Minus의 결과를 갖여 온다는 것이다. "善'에는 有漏라고 하는 조건이 뒤 따른다. "善"에는 1. 有漏(유루)와 2. 無漏의 善이 있다. "有漏"라는것은, '번뇌가 있다' '내가 (我)있다' 라는 것이다. 善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밑바닥에는 번뇌가 있다든가 나라고하는 我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空이라고하는 체험이 없는 보통사람들의 善. 이기성이 잠재해 있는 善 이다. 그것에 반하여 '無漏의 善"은, 번뇌가 없는 善이기 때문에, 佛陀(불타)의 善이고 보살의 여러가지 善을 가르킨다. 순수한 이타적인 善 이다.
제 2의 種子說은, " 等流習氣(등류습기)" 와 "'異熟習氣(이숙습기)" 이다.
"等流習氣"의 等流란, "인과(因果)와 근사(似)하다" 라고 정의 되어 있는것과 같이, '원인'과 '결과' 등이 동일한 성질이라고 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것을 말 한다. 善의 행위에 의해 熏習된 種子는 善의 성질 이지만, 그와같은 善의 성질은 果로서 결실 되기까지는 변화 하는 일은 없다. 선의 종자가 熏習(훈습)되어 보존되어 있는 동안은 악으로 변질한다고 한다는것 같은 일은 없다. 앞에서 말 했던 名言習氣는, 이것에 해당 한다."異熟習氣"는, 이것에 대하여 원인과 결과의 성질이 다르다고하는 習氣(습기) 이다. [論]에서는, "果. 因이 異(다르다)하다" 라고 말 하고 있다. 원인은 善 惡 이다. 善惡이 행위가 커다란 힘이되어 인격을 만들어 나간다. 그런데 결과로서의 인간의 생존의 실태는 善 惡 어느쪽도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적인 말로 "無記"라고 한다. 고래로 이것을 "因是善惡 果是無記"라고 하는 말로 표현 되어 왔다.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운데가 있는데, 만약 善의 행위에 의해 인격성 그것이 善이 되고, 반대로 惡의 행위에 의해 惡이 된다고 한다면, 善人이 타락하고, 惡人이 善人으로 다시 태어나 변화한다는 인간의 변용(變容)을 설명 할 수가 없게 된다. 또 만약 인간이 근본적으로 善이 되고 惡이 된다고 한다면, 반대의 성질이 섭취될 수 없게 된다. 즉 善人이 어찌하여 惡의 성질을 갖게 되는것인가. 惡人이 善의 행위를 어덯게 이르키며 얻게 되는가 하는 것이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果로서의 현재의 자기는, 善 惡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善 惡 어느쪽에도 갈 가능성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善 惡의 행위는 무의미 헤 지는 것은 아닐까. 善의 행위를 계속하여 쌓아 간다고 해도 결과는 "無記"이고, 악업을 쌓아도 "無記"가 된다고 하는 것이라면, 善 惡의 행위를 한다는것이, 인격형성에 무관계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善의 행위는, 善의 種子(종자), 習氣(습기)를 남기는데, 種子 習氣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 했던 "等流習氣(등류습기)"이다. 인격이라는것은 善 惡 어느쪽도 아니지만, 그 "無記(무기)"가 인격속에는 善의 행위를 쌓아 놓은 사람에게는 善에의 경향이 축적되어 있고, 惡業(악업)을 쌓아 놓은 사람은 근본적으로는 "無記(무기)"이면서도 惡으로의 강한 경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善, 악업이 무이미하다고 하는 일은 절 대로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異熟習氣(이숙습기)"라고 하지만, 그것은 "名言習氣(명언습기)"와는 별도로 실체가 있다고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名言習氣(명언습기)"와는 성질로 볼 때는, 善이라는것도 惡이라는것도 또 無記(무기)라고 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善惡의 習氣(습기)는, 힘이 강한 것임으로, 자기가 자기로서 熏習(훈습)되어 보존 해 가는것과 병행 하지만, 다른 성질인 "無記(무기)"의 습기 마저 현기 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포착된것이 "異熟習氣(이숙습기)"라는 것이다. 또는 "業種子"라고도 부른다. 현실 존재로서 인간의 근본 성질이 동일적으로 지속 되는 일면과 善, 惡, 無記와 일체의 경험을 포섭하면서, 그러면서 無氣가 있다고 하며 계속하는 일면을 포착해 나간다고 하는 것이 가능 하겠다.
제 4의 종자설은, "有漏種子(유루종자)"와 "無漏種子(무루종자)" 이다.
인간의 오염(汚染)과 청정(淸淨)의 각도에서 "種子"를 포착한 것이다. "漏"는, 번뇌(煩惱)를 가르키는것으로서, 끝까지깊이 생각하며, 외골수로 자아(自我)에 집착하는 마음의 움직임 이다. "有漏種子(유루종자)"는, 자아(自我)에 집착하고 이기적인 행동에 의하여 熏習(훈습)되어, 그 이기성을 끌어 내는 잠재적 능력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 했던 "本有種子(본유종자)" "新熏種子(신훈종자)"에는, 이런 저런 "有漏(유루)"와 "無漏(무루)"가 있었다. 수생(受生,나면서부터받은)과 種子에 주어진 선험적인 청정성은 "本有無漏種子(본유무루종자)"이고, 환경으로 인하여 습득된 청정성은 "新熏有漏種子(신훈유루종자)" 이다. 有漏(유루)라는 면에서 말 한다면, "本有有漏種子(본유유루종자)" "新熏有漏種子(신훈유루종자)"가 있다. "我執習氣(아집습기)"는 완전히 "有漏種子(유루종자)"이다. "有支習氣(유지습기)"속에서는 惡業(악업)은 당연히 "有漏(유루)"이지만, 善業(선업)에서는 "有漏(유루)"라는 것과 "無漏(무루)"의 두 방향이 있게 되겠다. "名言習氣(명언습기)"에서도"有漏(유루)" "無漏(무루)"의 두 방향이 있다. 불, 보살의 말은 "無漏9무루)"가 될것이고, 이기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헌 보통사람에게는 "有漏(유루)" 일 수 밖에 없다. "習氣, 種子"에대한 주된 분석분류는 이상과 같이 결론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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