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 30 송" 현장삼장법사 역

2024.12.01 12:09

김일하 조회 수:17

8. 所緣(소연)에 관하여,

  不可知執受-------不可知(불가지)의 執受(집수)와

  處-----------------處(처, 所(바로 소, 곳)

1). 阿賴耶識(아뢰야식)의 대상(對象)은 무엇인가,

  識은 어떠한 識이든 간에 반드시 대상을 가지게 되고, 대상에 작용(働)하고 있다. 識이 있다고 하는것은 , 동시에 대상이 있다고 하는것을 의미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각각(제각기) 識에 따라 다르다. 예를든다면, 안식(眼識)의 대상은 색경(色境, 즉 색채)이고, 그외 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佛果位(불과위)의 단계에서는 諸根互用(제근호용)이라고 하면서 識과 境 사이에는, 좀 더(more) 자유스런 관계를 인정하고 있지만, 평범한 우리들의 단계에서는, 각각 識과 대상의 관계는 확실하게 정해 져 있다. 그렇다고 할 때, 阿賴耶識의 대상은 무엇인가, 어떠한 심층의식적(深層意識的)인 "識"이라 하더라도 阿賴耶識이 하나의 識인 이상인 한은, 생각했던대로 그 대상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阿賴耶識의 대상은 頌(송)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執受"와 "處"가 되겠다. "執受(집수)란 [述記]에서는, "執攝(집섭)" "執持(집지)"라고 설명 하고 있다. "執(집)"이란, 제 8 識(아뢰야식)은, 종자(種子)를 執攝(집섭) = 붙잡아놓다그리고 그것을 "執持(집지)" = 보관유지한다. 라고 하니까, 그것이 阿賴耶識의 대상이 되겠다. "受(수)" 란, "受領(수령)" "覺受(각수)"의 의미 이다. 種子와 有根身(유근신, 신체)등을 수령하고, 그것을 대상으로 하여, 신체의 감각이라던가 심작용(心作用)응 이르킨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 한다면, 種子와 有根身(유근신, 즉 신체)가 대상이라는 것이다.

"種子"란 전술했던것과 같이, (1)선험적 소질, 능력, 기근(機根)의 "本有種子" 이고, (2)성장과정에서 학습되어 몸에 간직한 "新熏種子(신훈종자)" 를 말 한다. 그것을 대상으로 한다는것은, 거기에 관계하며 억매인다는 뜻이다. 관계하고 억매인다는것은, 동시에 집착(執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것이므로, 즉 인간은 심층의식 속에서, 자기의 소질에 집착하면서, 자기의 경험, 즉 과거에 집착하며 그것을 계속적으로 이어가려고 하는 존재라고 하는 인간인식의 입장에 서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이, 소질과 경험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서서 인생의 확립(굳건함을)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되겠는데, 반면으로는, 자기 인생의 한계에서의 자각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되겠다. "有根身(유근신)" 이란, 신체, 사람은 심층의식 속에서 자기의 신체를 내측으로부터 감각하면서, 또 거기에 관계하면서 살아 가고 있다. 누가 무어라해도 내적감각 그 자체로 살아가고 있다는것이 되겠다. 阿賴耶識의 所緣, 대상의 또 하나는 "處(처)" 이다. "處" 라는것은 器界(기계), 즉 자기를 둘러 싸고 있는 "事物(사물)" 이다. 阿賴耶識은 器界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 해 볼때, "事物"을 인식 한는것은 前五識(안이비설신)이 아닌가. 색채를 보는것은 안식(眼識)이고, 음성을 청취하는것은 이식(耳識), 향은 비식(鼻識), 맛은 설식(舌識), 감각은 신식(身識) 이다. "事物"의 세계를 인식하는 데는 前五識이면 충분 하다. 그런데 阿賴耶識과 같은 심층의식의 세밀한 "마음"이 事物을 인식 해야 한다는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라는 것일까.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의 세계는 前五識에 포착되어 인식되기 이전에 阿賴耶識에서 한번 대상으로서 포착된후, 그리고 前五識의 인식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 해서, 일차적으로 阿賴耶識에 의하여 의의(意義)가 부여되고, 즉 그사람의 가치체계속에서 자리매김 된것을 2차적으로 前五識이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阿賴耶識은, 그 사람의 문화의 뿌리를 통한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되겠다. 예를 든다면, 인도사람들에게 간지스 강은 신성한 강이라고하는 문화속에서 자라 왔다. Bus 나 기차로 간지스강을 건늘때, 그들은 강을 향하여 합장을 한다. 간지스강에서 목욕을 하고, 사후에는 뼈를 간지스 강에 흘려 보내느것을 최고의 행복이라고 하고 있다. 우리들에게는 탁하게 보인 그 물에 머리를 푹 담그는가 하면, 그 물로 양추질까지 한다. 唯識的으로 말 하면, 阿賴耶識 속에 훈습(熏習)되어진 "種子"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층에 심어진 "種子"가 다르기 때문에 보이는 강도 다르게 보여지는 것이다. 즉 "사물이 달라진다. 이것을 가지고 "안식(眼識)이 보기 이전에, 먼저 阿賴耶識이 인식 한다" 라고 하는 것이다. 阿賴耶識上에, 문화의 뿌리로 뒤덮어진 대상을, 그 뒤에 眼識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언어로 표시 할 떄, 시간적으로 어느정도의 폭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인상을받게 되는데, 阿賴耶識과 前五識의 의식의 차이는 시간적으로 동시찰라라고 하고 있다. 사물을 본다고하는 단순한 행위속에, 먼저그 사람이 구비하고 있는 소질과 능력, 문화의 가치관이 있고, 그것에 의하여 "事物"이 포착되고, 동시찰라적으로 그것을 前五識(안식)이 본다고 하는 이중의 구조로 되어있다. 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은 전부 같은 "事物"을 같은 식으로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각각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三界唯心(삼계유심)" "萬法不離識(만법불이식)" "一切唯識(일체유식)"과 같은 말을 가지고 阿賴耶識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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