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8 14:07
9. 인식(認識)의 구조, "四]分義(사분의)" 제 삼 송, 제 一, 二句))
了(료). 了가 된다(了= 마침표, 완료(完了), 깨달음, 이해할 了(了解).
그렇다면 그 대상에 관계하게 되는 방법, 즉 所緣(소연)에 대한 能緣(능연)은 어덯게 포착되고 있는 것일까다. [유식 30頌]에서는 "了"라고 하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了"라는 말은 "了別(료별)"이라고도 하는데, 梵語(범어)로 '위이 쥬 나~나' 의 번역어로 "식별(識別)한다는 작용 이다. 이 작용(働)속에, 4개의 작용이 포착되어 있는데, 이것을 "四分義(사분의)" 라고 한다. 즉 相分(상분), "見分(견분)" "自證分(자증분)" "增 自證分(증 자증분)" 의 4 가지 이다. "自證分"은 이 4가지 分의 중심적위치에 있기 때문에, "自體分)"(자체분)" 이라고 도 부른다. "相分"은 所緣, 즉 대상화 되어 포착 된 것, "境(경)"이 이라고도 부른다.
"見分"은 能緣의 작용, 대상화 된것을 대상으로 포착한다는 일면. "꽃 자체가 相分, 꽃을 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見分 이다. "自證分"은 그 見分을 내면에서 인식한다는 일면. 꽃을 보고 있는 자기를, 내면으로 부터 자각적으로 인식하는 일면이 되겠다. 自證分이라고 하며 말하는 모양을 인식이라는 구조의 각도에서 포착된 것이라고 할떄, "自體分(自證分)"은, 흔히 自證分의 배후에서, "自證分"을 대상으로 하여 확인하는 작용 이다. "四分義"를 크게 나눈다면 (1). 인식하는 대상 "相分" 과 (2). 그것을 대상으로서 포착하는 能緣의 측면, 즉 "見分" "自證分" "增 自證分"의 두 종류가 되겠다. 見分, 自證分, 增 自證分의 3 요소는 어쨋던 주관의 편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로 보아 "後三分" 이라고도 한다.
(1) 相分--------------------------(객관)
(2) 見分, 自證分, 增 自證分 ----(주관)
四分義에 관하여 이 두 점에 주의 하자.
(1)은, "相分" 즉 인식 대상 이다. 보통 외계에 존재하며, 주관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사물 이라고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유식(唯識)에서는, 주관과는 不離(불리)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인식 대상은 인식 주관에 인식되는 것에 따라서 대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이 나탄나게 된다는(된다고 할 수도 있다) 것이다. "四分義" 설(說)의 입장에서는, "自體分"이 한편은 주관측의 "見分"으로 나타 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객관측의 "相分"으로도 나타 난다는 것이다 "自體分"이 見分 과 相分 으로 나뉘어 져 나타나는 것을 [論]은, "識體 轉 해서 二分으로 似(같을 사)한다"라고 설명 하고 있다. [成唯識論]은, 識이 움직인다(轉)고 하는 것은, 바꾸어 말 한다면, 見, 相 二分이 된다고 하는 인식론의 입장에 선(立却) 다. 간지스 강의 물은, 깨끗한 물도, 더러워 진 물도 아닌 그저 물 이다. 그런데 일부의 사람들은 그것을 신성한 것으로 보고, 일부의 사람들은 그것을 탁수(濁水)로 보게 된다. 신성으로 본 사람들은, 시종일관으로 신성으로 볼 것이고, 탁수라고 본 사람들은, 완전히 전부가 탁(濁)이 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문화에 따라서, 그 사람 독자의 대상으로 보여 진 다는 것이다.
(2)는, "增 自證分"의 성립 이다.
인식 구조라고 하는 점에서 국한 하여 볼 떄, 相分, 見分, 自證分의 三分으로 추분한 설명이 된다고 생각 되는데, 과연 그 이상인 增 自證分이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라는 것이다. 增 自證分을 정립 한 것은 [成唯識論]의 독특한 교설이라고 알려 져 있는데, 增 自證分 의 교설이 무엇 때문에 필요 하다는 것일까 , 그것은 增 自證分이 自證分을 확인 하기위하여 필요하다는 것이다. "見分"을 확인 하는 것은 "自證分", "自證分"은 확인 하는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增 自證分"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增 自證分을 확인 하는 그 무엇이 즉 增 自證分을 장식하기 위하여 그 배후에 무엇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문이 있게 되면서, 그 배후, 또 그 배후로 무한히 삭급 해 올라 가게 되는것 같이 생각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唯識은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단정 한다. 왜냐하면, 增 自證分을 확인 하는 것이 自證分이기 때문 이란 것이다. 즉 自證分은 한편으로는 見分을 확인하고, 또 한편으로는 增 自證分을 확인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增 自證分이 정립됨으로 인하여, 四分 속에서 내측 동지(뜻이 도일해 짐으로)의 관계가 설명되게 된다는 것이다. 즉
見分은 相分과 만 관계 한다. 그 見分에 관계하는것이 自證分인데, 見分은 自證分과는 관계를 하지 않는다. 見分이 관계하는것은 오직 相分 뿐 이다. 즉 相分은 見分. 見分은 自證分이라고 하는 일방적인 관계만이 포착 된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自證分 과 增 自證分의 관계사이 에는 自證分, 增 自證分이라는 상호관계가 있게 되기 때문에, 거기서 처음으로 내측 동지(동일한 뜻을 가진다)의 관계가 성립 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四分은 매 識, 하나하나의 識과 心所에 제각기(각각) 있게 된다. 즉 "본다" 라고 하는 하나의 행위 만 보더라도, 안식(眼識) 하나 자체에, 四分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識(어떠한識이든)이 작동 할 때는, 반드시 遍行(편행, 후술할 것임)의 다섯개의 心所가 같이 작동하게 되고, 그 하낳나에 각각 四分이 따르게 되기 때문에, 그 각각 만 해도 20개의 "마음"의 움직임이 분석 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共動(공동,같이 작동하는)하는 心所는 遍行 말고도, 別境(별견), 善(선), 煩惱(번뇌), 隨煩惱(수번뇌) 등이 있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에 다 四分이 있게 된다고 하는것은, 실로 많은 요소가 합쳐지면서 "마음"의 움직인이 포착 된다는 것이 되겠다. 四分 과 心所의 관계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성찰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전체적 종교적 자성(自省)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윤리적인 완결성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적당 하지 않을까 해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측동지(內側洞志)라고 하는 관계의 이해는 그대로 존중 되어야 한다고 사료 된다.
다음은, "四分"과 "熏習(훈습)"과의 관계에 접촉 해 보자.
위에서 본것과 같이, 四分은 (1) 相分=객관. (2)後三分=주관 이라고 하는 두 측면에서 대별 하면서 보았는데, 이 두개의 영역은 나름대로 각각 阿賴耶識에 種子를 熏習 한다. (1)을, "相熏習(상훈습)" 이라 하고 (2)를 "見熏習(견훈습)"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見熏習은 상세하게 말 하면 "後三分"을 말 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책을 읽는다" 고 하는 경험을 채용 해 보자. 그 내용이 "마음"에 새겨 들게 되는것이 "相分熏" 이고, 그 감동이 "마음"속에 남게 되는것이 "見分熏" 이 되겠다. 객관과 주관 이라고 하지만, 하나의 識體(식체)가 전변(轉變)하여 二分 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히 따로따로의 것은 아니지만, 熏習 될 때는, 객관과 주관이 제 각기 種子를 熏習하는 것이라고 생각 된다.
다음은 四分에 관한 異說(이설,다른설)을 소개 하겠다.
1. 安慧說 = 一分說(自證分 하나만)
2. 難陀說 = 二分說(相分, 見分 두개만)
2. 陳那說 = 三分說(相分, 見分, 自證分)
4. 護法說 = 四分說(相分, 見分,自證分, 增 自證分)
阿賴耶識을 論하는 항목 이기때문에 제 8식에 관한 것만을 이야기 했는데 혹여, 이것이 제8식 阿賴耶識에만 관련된 교설이라고 생각 할찌 모르겠지만, 이 四分說은 8 識의 心王과 51 心所의 거이 모두에 관계되어있는 교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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