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2025.03.19 10:59

김일하 조회 수:3

8. 末那識이 없는 세계 그 2.

  전장에 이어 安慧菩薩(안혜보살)과 護法菩薩(호법보살)으 두 설을 비교 해 보겠다.

"末那識"은 我執(Ego)의 마음"의 근원이라고 하며 "有覆無記(유복무기)의 것이라고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할 때, 이 染汚(염오, 아집으로 더러워진 마음)된 것이 청정화(淸淨化)될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문제 이다. 심한 我執(Ego)의 "마음"인 "末那識"의 청정화라고 하는것은, 자기모순을 보는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染汚되어 있는것이 末那識의 본성이기 때문에, 청정 한 末那識 은 있을 수 없다고 하게 되는것이 당연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說에 서게 된 것이 安慧보살. 즉 安慧보살은, 청정한 末那識은 없다는 설에 입각 했다고 알려 져 있다. 수행을 하는동안 사람이 청정무구(淸淨無垢)하게 변한다고 할 떄, 染汚를 본성으로 하는 末那識은 소멸 하게 된다고 하는 경우, 我執의 작용(働) 일부가 소멸 한다는것이 아니라, 제 7식 전부가 없어 진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佛果位(불과위)에 도달하게 되면, 8식중에서 제 7식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에 전체식은 8식이 아니라 7식이 되게 된다. 이런 경우를 "佛果七識(불과 7 식)이라고 부르게 된다. 도리에 무리가 없는 平明說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설에 대하여 護法보살은, 청정한 末那識은 인정 하지만, 佛果位에 도달한 末那識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대로 청정한 "마음"으로 전환(轉換) 하는 것일고 했다. 이것은 佛果를 이루었다든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것으로서는 인간의 기본구조를 조곰도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것이 아니라, 8식으로서의 인간구조는 조곰도 변하지 않지만, 내용면에서 확실히 변하게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成唯識論]은, 

1). 所緣이 다름.

2). 같이 작용하는 心所의다름.

3). 三性의 다름. 으로 정리하고 있다.이것을 도시하면 아래와 같다.

                          所緣                      心所                     三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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染汚의 末那       阿賴耶識의 見分         遍行 5                   有覆無記

                                                    別境의 慧

                                                    근본 煩惱 4

                                                    大隨煩惱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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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淨의 末那       無我相                     遍行 5                    善

                      眞如                        別境 5

                      一切法                     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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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所緣"이 변한다. 染汚의 경우는, 末那식은 阿賴耶識의 見分을 대상으로 해서 허구의 자아상을 묘사하고, 거기에 집착을 계속하며 간다. 자기이외의 다른것은 절대로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그것이 청정한 末那의 전환함에 따라서, 진정한자기의 相(모양)인 無我의 자기가 보여 오게 된다. 無我의 자기란, 진리 그 자체의 相이기 때문에, 無我의 자기가 보여지게 된다는것은, 동시에 空(공), 無常(무상), 無我, 無相의 一切法(일체법)이 보여진다고 하는것이기도 하다. 淸淨의 末那識으로서의 전환이라고 하는것은, 末那識을 전환시켜 "平等性智"를 얻었다고 하는것이 된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轉識得智(전식득지)"라고 일컷는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에 주목하며, 자기만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은 얕잡아 보면서 나아가는 이기적인 "마음"이, 無我인 자기의 진정한 자태를 보게 되면서, 진리에 눈을 뜨고, 一切法, 즉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보게 되는 "마음"으로 변 한다는 것이다. 末那識의 轉識得智란 참 멋지고 근사 하다. 자기만을 응시하고 있던 협익(狹益)했던 시야가,

확 넓게 열리게 되어, 自我愛가 平等愛로 바뀐다는 것이다. 他를 배제했던 "마음"이 他를 존중하는 정신을로 변하게 된다는 것은 감동적인 전환이라고 생각치 않을 수가 없다.

安慧보살의 說에서는, 末那識은 오직 染汚의 "마음"이,空, 無常, 無我의 체험에 의하여 인간이 정화됨과 동시에 그 末那識을 소실 해 간다고 생각 했다. 그것은 더 없이 온건하고 명백한 이해라고말 할 수 있겠으나, 이에대한 護法보살 說이 ""染"보다 "淸"으로의 감동적인 전환은 아주 멋지다.

다음으로 "心所"에 대해서는, 染汚의 경우 18의 心所가 같이 작동하고 있다고 하고 있는데, 淸淨으로 전한함과 동시에 21개로확대되어 가는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수적으로  의 확대를 나타내고 있는것을 보게 되지만, 그 보다 중요한것은 그 心所의 내용 이다. 染汚位의 心所를 보게되면, 18개중 12, 즉 2/3 가 "煩惱"의 심소라는 것이다. 그것이 淸淨位가 되면서, 煩惱의 心所가 완전히 없어지면서, 모두가 "善"의 心所로 된다. 數線上에서 작용(働)의 폭이 변 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한것을 볼 수 있다. 

"別境" 의 心所에서도처음의 "慧" 만에서 五別境 전부로 확대되게 되는데 "別境"이라고 하는것은 나중에 보게 되는것과 같이, 강력정도와 적극성과 같은 성질을 가지게 되는 心所이기 때문에, 확실히 그 내용이 변 해 버린 제 7 식이 善이 되는 "마음"으로서 적극적으로 작용(働)하고 있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다. 제 7식의 내용이 이와같이 전환하게 되기 때문에, 善, 惡, 無記인 "三性"으로 말 할 때 "有覆無記"였던 染汚位의 제 7 식 은 전체가 "善"이 되는 제 7 식 으로 변화 도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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