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2025.03.26 12:34

김일하 조회 수:4

五. 第三能變(제3능변), (第八, 九, 十五, 十六頌(제 8, 9, 15, 16송)

 1. 第三能變(제 8 그리고 9 송) 이다. 

    次第三能變(차제3능변)   다음(次)은 제 3 능변을 말 할 차례다. 

    差別有六種(차별유6종)   差別(서로다른것이) 6 種(여섯종류가)이 있다.

    了境爲性相(료별유성상)  境을 了하는것을 性과 相으로 한다.

    善不善俱非(선불선 구비) 善과 不善을 俱非 한다.

    此心所遍行(차심소편행)  이(此) 心所는 遍行이다.    別境善煩惱(별경선번뇌)  別境 과 善, 煩惱, 隨煩惱, 不定(수번뇌, 부정) 이다.

    皆三受相應(개삼수상응)  모두(皆) 三受와 相應(서로응답)한다.

위의 頌을(노래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이제부터 는 제3능변을 말 하려 한다. 각각의 성질과 작용에 다름에 의한 분류를 하게 되면 6종류가 된다(6가지가 있다). 대상을 구별하며 인식하는것이 본성(本性)이고 구체적인 相(모양) 이다. 작용(働)하는 범위도 넓어서 善,惡,無記의 三性에까지 이른다. 제 3 能變과 작용(働)하는 心所로는 遍行과 別境과 善과 煩惱와 隨煩惱와 不定이 있다. 결국은 전부의 心所를 말 한다. 受에 있어서는 (관하여는) 三受(善,惡,捨)의 전부와 相應 한다. 라고 개략 할 수 있다. 

1). 여섯개의 마음(次第三能變/ 此別有六種).

여기서 말 하는 三能變이란 전 5識과 6意識을 말 하는 것이다. 즉 감각기능인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촉식), 知情意(지정의)의 제6의식 이다. 이 6 識은 기본적인 인간분석인데, 唯識 이외의 佛敎와 佛敎學派에서도 다 같이 인정하는 교설 이다. 

(1). "前五識"은 각각 시각작용, 청각작용, 취각작용, 미각작용, 촉각작용 을 가르키는데, 이것들을 "제 3 能變"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자기의 감각능력에 의하여 대상의 인식범위가 한정 되어 있다는것을 의미 하기 때문이다. 시각작용을 예로하여 보면, 우리들이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집중하여 본다고 하더라도 자외선과 적외선같은 것을 볼 수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여기 어떤 "事物(사물)"이 있다고 할 때, 우리들은 누구라도 십시일반으로 언제던지 꼭 같이 사물을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 하게 되는데, 그것이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사물을 인식 할 때, 자기가 인식하려고 하는것 만을 인식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 하면 자기 관심사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것이 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사고는 능동적으로 작용한다고 하여 能變이라고 명명 하게 되었 다. 

(2). "第6 의식"은, 知,情,意(지정의)의 전부를 포섭하고 있게 되기 때문에, 자기의 지식과 교양과 취미, 기호같은 것에 따라 모든 인식대상이 한정되게 된다는 면을 지적 하려고 한다. 제6의식은 아래 표와 같이 정리분석 된다.

 

              1. 五俱의 意識               (1)五同緣의 意識

제6 의식                                    (2)不同緣의 意識

              2. 不俱의 意識              (1)五後의 意識

                                               (2)獨頭(독두)의 意識       a. 定中의 意識

                                                                                b. 夢中(몽중)의 意識

                                                                                c. 獨散(독산)의 意識

"五俱의 意識"의 意識이란 제 6의식이, 前5식과 어덯게든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 한다. "五同緣의 意識은 제 6 의식이 전 5 식과 같은 대상에 집중 해 있는 상태 이다. 예를들면 책을 읽을 때, 활자를 보게 되는것은 안식(眼識)인데, 意識이 그것에 집중 몰두하며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는 상태를 말 한다. 이것에 반하여 "不同緣의意識"은, 감각이 작용(働)하고 있다는것은 五同緣의 意識과 같지만, 제 6 의식 자체는 그것과는 다른 별개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상태를 말 한다. 즉 읽고있는 내용과는 전연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없다면 보고 있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상태를 말 하는데 이런경우는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不俱의 意識"은 전 5식과는 확실히 별도로 제6의식이 작용(働)한다는 상태이고, "五後의 意識"은 전5식을 계기로하여 작동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五俱의 意識"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하겠지만, 대상이 안전(눈앞에)에 나타 나 있는 것이 아니고 상상에서 떠다니는 것이기 (餘음 餘情과같은 감정)) 때문에 "不俱의 意識"에 포함 되게 되는 것이다. 멋지고 감동적인 예술작품에 접촉 한 후, 그 감동을 음미하며 돌아 간다는 것과 같은 상태 이다. "獨頭의 意識" 은 당연히 제6의식이, 전5식과 확실히 별도로 독자적으로 작용하는 상태를 말 한다. "定中의 意識"은 禪中(선중) 의식의 상태임으로 한편으로는 망상이라고 불리우는 환각, 환상의 상태를 가르킨다고 할 수 있겠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체험과 身心脫落(신심탈락)과 非思量(비사량)의 상태와 관계 한다고 하는 관계를 가지지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중요한 意識을 말 한다. 신심탈락 과 비사량은, 제 6의식의 작용(働)을 부정한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그것이 전환 된 상태라고 하는 입장에서 본 다면 확실히 제6식 과 무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夢中의 意識"은 설명 할 필요도 없이 "꿈" 을 말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꿈"은 기본적으로 심층의식과의 관게에서 포착 되는 것이지만,

唯識은, 제6의식 이라고 하는 표층의 "마음"의 문제로서 이해하고 있다. "꿈"에는 '靈夢(영몽)" "夢告(몽곡)" 와 같은 (神聖) 꿈도 있기 마련인데, 그러한 부분을 어덯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부분적으로는 있겠다. 다만 唯識에서는, 심층의 대부분의 "마음"의 작동을 제 8 阿賴耶識中에 있는 種子로 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꿈"도 심층의식상에서 포착하게 된다는 이유도 될 수 있겠으나, 그러나 "제 8 阿賴耶識"은, 사물을 생각한다든가 추리한다고 하는 상상력과 구상력에서 무엇인가를

Image하는 것과 같은 작용(働)이 없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또 "제7 末那識"은 일념으로 자기만을 사랑하며 계속 해 가는것만의 능력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story를 하나의 정경에 따라, 전개시켜 간다는 꿈은 제 8식 도 제 7식도 아닌 제6의식의 영역이라고 위치시키는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할 수 밖에 없다. "獨散의 意識"은 틀림없이 제 6으식 의 독단장이 되겠다. 전 5식의 활동을 떠나서, 제 6식 만이 자유로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안정되어 있지 않은 산란한 상태를 의미하게도 되지만, 반면으로는 전 5 식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히 활동 한다는 것도 된다. 즉 사색, 판단, 상상력이라든가, 구상력,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의 작동의 대부분이 이 "獨散의 意識"에서 이루어 제게 된다. "보살의 서원"이라는 것도 지금은 없는것을 志願(지원)하고 있는것임으로, 분류하게 되면 이 "마음"의 작동의 연장선상에서 포착 하게 된다고 생각 된다. 어떤 사정으로 고정화 되어버린 의식상태를 돌파하게 하는 것은 이 "獨散의 意識"이라고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佛敎에서는 "事物을 있는 그대로 본다"라는것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다. 존재하는 사물에 무엇인가 첨가한다는것은 잘못이고, 미혹을 더 깊게 하게 되는것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로 중요한 면이 있지만, 상상력, 구상력 같은 것이 경시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 이다. 이러한 문제에서 "獨散의 意識"은 그것에 대한 답의 하나 일 수도 있겠는데, 물론 ."관심" "관법"같은 행위는 眼前(안전)에 있는것을 觀(관)하는것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것을 觀取(관취)한다고 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獨散의 意識"은 眼前에 나타 나 있는것과 관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第三能變" 은 6 種이 있고, 각각 따로따로 대상을 구별하며 확실히 인식 한다는 점에서 공통이라 하겠다. "境을 了하는것으로 性과 相으로 한다"고 했다. "第二能變末那識"도 "思量하는것을 性과 相으로 한다"라고 하고 있다. 같은 '性' 과 '相'이라고 하는 것으로 포착하고는 있으나 그것들의 내용은 다르다. 第二能變 과 第三能變의 성질의 다름을 잘 해석한 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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