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 30송" 현장삼장법사 역.

2025.03.29 11:41

김일하 조회 수:4

2. 三性(삼성)으로 作働(작동)한다.

   三性이란, 善, 惡, 無記(선,악,무기)를 말 한다. 唯識(유식)에서는 뒤에서 말 하게 될, 遍計所集性(편계소집성), 依他起性(의타기성), 圓成實性(원성실성)이라고 稱(칭, 부르는)하는 三性說도 있다. 뒤섞인것 같지만 여기서 설명하게되는 三性을 "善等 三性(선악무기의 삼성)"이라고 부르고, 또 "遍依圓三性(편이원삼성)" 이라고도 부르는데 대체적으로는 같은 말이라 하겠다. 善等三性(선등삼성)이란 善,惡,無記(선,악,무기)의 三種(삼종류)인데, 인간의 가치기준을 말 하는 것이다. 제6의식은 그 대부분의 성질이 되어 작동 한다. 여기서 無記는 非善非惡(비선비악)을 말 하는데, 善惡 어느쪽도 아니라는 뜻 이다. 이 無記를 보통 둘로 나누는데, "有覆無記(유복무기)" 와 "無覆無記(무복무기)"로  한다는것은 앞에서 말 한바와 같다. 즉 제7 末那識은 有覆無記이고 제8阿賴耶識은 無覆無記 였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 제6의식은, 善,惡,無記의 어느쪽도 다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존재 근원이 無記인 자기가, 그것을 바탕으로 善, 惡, 無記의 어느쪽 행동도 이르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되겠다. 그럼에도 제 6의식은 표층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됬을떄, 그것을 자기가 스스로 자각하게 된다는것임으로, 다시 말 해서 자각한다는 것은 惡을 방지하고 善을 수행하는것이 자기의 책임하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의미 라는 것이다. 물론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생각하고 뜻이 있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자기의 생각과는 반대로 자기의 발밑에서 그것이 붕괘되어 버리는 절망적인 자기의 심층(深層,심층심리)인 자기와 만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조직화 한것이 唯識佛敎이기 때문에, 防惡修善(방악수선)을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하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唯識은 인간을 그렇게 달콤하게 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것을 제 6 의식은 자각한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성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善 惡 어느쪽도 아닌 無記의 성질도 구비하고 있다고 하는것이 됨으로, 어느 방향으로 지향하는가는 순전히 자기의 책임이라고 하는것을 시준(示晙,독바로 보여주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善한 種子를 심었다고 해서, 반드시 善한 수확을 한다라고는 할 수 없으나, 종교에서는, 깊이 들어 갈수록 지기 힘에의 절망감이 없어지고, 그것을 초월함으로서 절대적 존재에 자기를 투입하며 평안함을 얻게 된다고 하는 구조가 있다. "신에게 맡긴다" "佛에게 맡긴다"라고 하는것이 근본적인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佛에게 맡긴다고하는 결단은 所詮(소전,뜻)을 자기가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즉 그런 결단을 佛에게 의지한다고 해서는 결코 않된다는 것이다. 佛의 힘과 자기의 힘을 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佛의힘 이 자기의 힘, 자기의 힘이 佛의 힘, 이런 현상을 感應道交(감응도교)라고 하는 것이다.

3. 相應의 心所(심소). 廣緣(광연)의 意識.

  "마음"이 작동 할 때는, 여러가지 구체적인 相(모양)이 나타난다. 그 相을 분석한것이 "心所"라는 것이다.

제 8 阿賴倻識과는 "遍行(觸,作意,受,想,思)" 같은것이 같이 작용(働)  한다. 

제 7 末那識과는 1."遍行" 2."別境의慧" 3.근본번뇌의 4개(我,癡,我見,我慢,我愛) 4.隨煩惱中 大隨煩惱가 俱(같이)作用(働) 한다.

제 6 意識과는 제6의식에서는 모든 心所와 共(공)히 작동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心所論을 따로 공부하겠지만 心所는 전부 51개소로 분석 하고 있다. 제 6 의식은 그것의 대부분과 俱作用(働) 한다. 이것은 8識中에서도 유일한 특성이 되겠다. 이것이 "廣緣의 意識이라고 불리워지는 이유인 것이다. 이 광연의의식이란 어느방향으로도 향할 수 있다는 것이 됨으로, 그것을 어느 쪽으로 향하게하는가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되 던져지는 질문이 되겠다.

4. 受.

  "受"란, 領納(영납)이라는 뜻, 구체적으로는 苦, 樂, 捨(사)의 三受 이다. 즉 외계로부터 정보를 수용 할 때, 우리들은 우리들의 고유의 감각과 감정을 가지고 그것을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 6 의식은 이와같이 대부분을 俱作用(働)하게 된다.

제 8 阿賴耶識은 "捨受" 즉 非苦非樂이다.

제 7 末那識은 [三十頌]이 직접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論]에 따르면, 이것을 "捨"라고 보고 있다. 

제 6 의식은 "三受"라고 할 때는, 그 모든것과 같이 작용(働) 하고. "五受"라고 할 때는 樂(락), 憂(우), 喜(희), 捨(사)의 4개와 작용(働)한다. "五受"에서 "苦(고)" 는 前5識과 작용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할 때 "樂"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도 되는데, "樂"은 禪定(선정0 체험속에서, 前5 識이 작용하지 않는 심층의식의 특별한 "樂(色界第三禪은 維喜妙樂地)" 에 있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苦"와는 다르게 제 6 의식 과  공히 작동하게 된다.

前五識은 "三受"에서는 전부, "五受"에서는 苦 樂 捨와 俱作用 한다.그렇다고 할 때 [唯識三十頌]은 이다음의 第十頌에서 十四頌까지 제 6 의식 과 상응하는 51의 心所의 전부를 열기하는것으로 心所論을 상세히 전개하고 잇는데, 우리들은  제 十五頌과 十六頌을 그에 앞서서 배우게 되느 것으로 하겠다. 외냐하면, 거기에 第三能變의 所依(소의), 俱轉(구전), 起滅(기멸)이 나타 나 있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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